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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방송산업, 새로운 판이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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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대호
인하대 교수·언론정보학

정부의 국정 과제들이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는 데 비해 방송산업 정책 추진은 늦은 감이 있다. 이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모든 산업에서 창조와 혁신을 이루자는 정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상황과 크게 대비된다. 콘텐트와 방송이 소프트웨어 못지않게 꽃을 피울 수 있음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러하다. 물론 방송정책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방송 수신료, 유료방송 점유율 규제, 중간 광고, 700MHz 주파수 대역 사용 등 많은 문제들이 제기돼 있다. 오래 전부터 이해 당사자들의 갈등관계에서 나온 이슈들이다.

그러나 방송 산업에서 활동하는 참여자들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늘어난 상황에서 각 당사자들의 이해 갈등을 해소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송산업에 대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패러다임으로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더욱이 정부가 창조경제를 국정의 핵심 비전으로 내세웠을 때 방송산업은 가장 좋은 기회를 맞은 것과 다름없다. 방송은 ICT 인프라와 창의적인 콘텐트가 결합한 대표적인 창조경제 산업이기 때문이다. 음악·영화·광고·게임 등 창의적인 콘텐트가 생산·유통되는 핵심 플랫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마련 중인 방송산업 발전 종합계획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DJ정부 시절 방송개혁위원회를 구성해 통합방송법을 제정한 이후 14년 만에 방송산업 발전전략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이다.

 방송산업 발전 종합계획은 크게 변화한 새로운 ICT 환경을 수용하고, 창조경제의 핵심 분야로의 정체성을 담는 것이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에서 방송을 ICT 생태계의 중요한 축으로 간주해 방송을 ICT 생태계 발전 공약에서 다루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방송을 언론과 저널리즘의 영역 중심으로 보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꾼 일대 혁신이다. 즉 2000년 통합방송법이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면, 2013년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은 방송과 콘텐트 산업의 창조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심이 돼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규제 개혁에 있다. 규제를 혁신해 창의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방송에 대한 규제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방송 구조, 기술을 기반으로 해 이루어졌다. 전송방식에 따른 칸막이식 사전규제가 대표적이다. 이제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서비스를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융합을 촉진하는 개방성이 필요하다. 이것이 가장 절실한 이유는 국민들의 편익을 높이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전규제를 줄이고 불공정 경쟁이나 이용자 피해에 대해 사후규제를 강화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는 획기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방송 플랫폼은 더 이상 국내 기반의 방송만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아니다. 인터넷·모바일과 결합해 세계시장을 향한 스마트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다. 또한 방송은 교육·관광·유통 등 다른 분야와 결합, 융합해 이전에 상상할 수 없던 창의적인 서비스를 만들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좋은 플랫폼을 여전히 낡은 방송의 규제 틀로 제한하는 반(反) 창조적인 상황에 머물러 있다. 방송 플랫폼 위에서 기존 콘텐트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융합서비스 등 창의적인 비즈니스를 추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송산업이 개방적이고 자율성이 높을 때 방송계에도 많은 창업이 일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 전통적인 공공성 중심에서 창의성과 융합 중심으로 방송산업의 판을 바꾸는 파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김대호 인하대 교수·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