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상품권, 3000원 환불 때도 자필 서명하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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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가정주부 진모(35)씨는 몇 달 전 친구가 휴대전화로 보내 준 스타벅스 모바일 커피 쿠폰을 사용하려다가 낭패를 봤다. 동네에 스타벅스가 없어 쓰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시내에 나간 김에 스타벅스에 들렀는데 쿠폰의 사용기한이 지나 버렸기 때문이다. 진씨는 “날짜를 확인하지 않은 잘못도 있지만 상품권 기한이 두 달밖에 안 되는 게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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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모바일상품권을 사용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사용기한이 일반 상품권에 비해 지나치게 짧고, 환불 절차가 까다로워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모바일상품권은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쿠폰을 구매하고 바코드·QR코드가 찍힌 메시지를 보내면 수신자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품으로 교환하는 서비스다. SK플래닛의 ‘기프티콘’, KT엠하우스의 ‘기프티쇼’, LG유플러스의 ‘기프트유’ 등이 대표적인 예다.

3일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이동통신 3사가 발행한 모바일상품권은 2008년 32억원에서 지난해 1063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상품권 대행업체들이 발행하는 모바일상품권까지 감안하면 전체 규모는 지난해 1600억~1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큐피콘을 발행하는 모바일상품권 기업 유비클의 심봉규 대표는 “문자메시지 형태로 간단하게 보낼 수 있어 생일이나 기념일 선물로 인기가 많다”며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증한 데다 모바일상품권이 발행되는 제품도 커피·아이스크림·햄버거 등에서 화장품이나 레스토랑 식사권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바일상품권을 이용하려다 진씨처럼 곤혹스러운 경험을 한 고객들도 적지 않다. 모바일상품권의 사용기간이 2~3개월로 짧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모바일상품권의 사용기간은 법으로 정해진 게 아니라 발행주체가 임의로 정한다.

유효기간 안에 쓰지 않더라도 상품권이 아예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래부의 상품권 표준약관에 따라 사용기간이 지났어도 발행일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구매액의 90%까지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문제연구소 컨슈머리서치의 백진주 연구부장은 “모바일상품권을 구매할 때 환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환급받을 생각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환불 절차가 까다로운 것도 문제다. 컨슈머리서치에 따르면 유효기간이 지난 모바일상품권을 환불받으려면 신분증·통장·요금청구서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수신자의 자필 서명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선물한 사람이 선물받은 사람에게 선물 준 것을 취소할 테니 서명을 해 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일부 모바일상품권은 쿠폰을 보낸 사람만이 환급을 신청할 수 있어 쿠폰을 받은 사람은 아예 환급 신청도 할 수 없다.

업체들은 “환불 대상자 신원 확인과 부정 사용 방지를 위해 이 같은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소비자들은 “몇천원을 돌려받자고 이런 절차를 밟느니 그냥 먹은 셈 치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유효기간 안에 쓰지 않으면 바로 구매자에게 적립금으로 돌려주는 시스템을 갖춘 곳은 큐피콘뿐이다.

 이처럼 소비자가 사 놓고 쓰지 않은 상품권 잔액은 고스란히 이통사나 상품권 발행업체의 수익으로 돌아간다. 이재영(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모바일상품권 미환급 총액은 올해 7월 현재 216억원이다. 이 가운데 2008년 발생한 3억1500만원은 법률상 소멸시효에 따라 5년이 초과되는 시점인 올해 중으로 소멸된다. 내년에는 올해의 5배인 17억4700만원이 소멸될 전망이다. 이 의원은 “모바일상품권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면서 부정 사용과 환급금 소멸 규모도 급증하는 상황”이라며 “전반적인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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