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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이 삼각산 아닙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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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러분의 편안한 여행을 돕기 위한 안내원입니다. 서울까지는 약1시간30분 걸립니다.』북한 기자단을 태운 서울 영5-7532호 유신 고속관광 「버스」가 12일 상오10시47분 서울을 향해 움직였다.
차안에는 조간신문이 놓여져 있었다. 북한 기자들은 「버스」좌석에 비치된 조간신문을 훑어보며 『외국 기자들도 많이 왔구먼. 대대적인 사업이지…』하며 8면 전부를 눈여겨봤다.
평양 방송 기자라는 유철은 『서울가면 많은 사람과 통일 문제를 논해야겠다』며 약간 얼굴이 상기되기도.
북한 기자들은 서울 방문의 소감을 묻자 『같은 강토를 오랜만에 딛는데 왜 감회가 없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때 차안에는 「스테레오」에서 감미로운 흘러간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목포의 눈물』등 연달아 구성진 옛 노래가 「테이프」를 타고 흘러나왔다.
차안에서 흘러간 옛 노래가 나올 때 『감상이 어떠냐』는 질문에 한 북한 기자는 『대체로 남한의 노래는 맥이 없고 비관에 잠긴 듯한 곡조이다. 노래는 혁명적이고 힘이 솟는 힘찬 것이어야 한다』고 답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눈을 지그시 감고 듣는 사람도 있었다.
「버스」가 「자유의 다리」를 통과할 때 차안 안내양이 『「자유의 다리」는 6·25동란의 흔적을 들 수 있는 곳으로 실향민이 향수를 달래는 망향의 다리』라고 설명하자 한 북한 기자는 부서진 철교의 교각에 「카메라」의 「셔터」를 연속적으로 누르며 『옛날에 있던 철교가 빨리 복구되고 자유의 다리가 통일의 다리가 되어 남북이 오갈 수 있는 민족의 대교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버스」가 파주 군에 이르자 논을 가리키며 『벼농사는 잘된 것 같다. 그러나 벼의 키가 너무 크다』고 말하기도.
판문점∼서울간의 탄탄대로를 본 소감을 묻자 한 기자가 『길이야 사람이 마음대로 다니는 곳인데 잘 닦아놓고 통행인에게 돈을 받는다니 되겠느냐』고 말해 『고속도로 등 유료도로는 따로 있고 이 길은 통행료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부터 연도에 늘어선 사람들에게 마주 손을 흔들며 얼굴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일본 동경에 있는 조총련 계 기자라는 오기옥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첫걸음이지만 모든 게 굉장히 다르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마치 내가 일본에 돌아온 느낌』이라며 『단지 마을 동구 앞에 서있는 노인들의 한복 차림을 보니 나도 한겨레라는 느낌이 간다』고 말했다.
북한 기자 단장인 중앙통신 종합편집국장 고명철은 차가 지날 때마다 산을 가리키며 『산에 나무가 적군…』하며 옆 사람과 말을 나눴다.
몇몇 기자들은 「버스」뒤에 경찰 「사이카」와 많은 취재 자동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뒤따라오자 『차들이 멋있게 따라 오누만…』하고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큰 마을이 나타날 때마다 기자들은 『이곳이 어디냐』며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열심히 「메모」를 했다.
벽제면에 이르러 멀리 북한산의 모습이 보이자 『저게 삼각산 아닙니까』고 물었다.
이들은 고양군 신도 면에서부터 연도에 많은 사람이 나와 환영의 뜻을 나타내자 몇몇은 녹음기 「마이크」를 차창 밖으로 내밀며 녹음하려고 했다.
「버스」가 박석 고개를 넘어 『이제부터 서울』이라는 안내양의 말에 약간 긴장하는 듯하며 일제히 「카메라」를 창 밖으로 내밀었다.
이들은 많은 인파를 보고 묻는 말에는 대답을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고명철 단장은 『서울에는 간판이 많지만 조선말을 쓰지 않고 「코카·콜라」등 외국말이 많다』고 말했다.
차가 사직 공원 앞길을 지날 때 조선통신 이형구 사장은 『저기가 매동 소학교 구만』하고 아는 체했다.
북쪽 기자들은 『12일 아침 개성에서 대대적인 환송이 있었다』고 말하고 『연도에 나와 북조선 인민들의 조선 통일 염원이 얼마나 열렬했는지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 시가로 들어오면서 많은 간판이 눈에 띄자 『돈이 있어야 살고 살기 위해서는 저렇게 간판을 많이 붙여야하는군』이라며 『도시가 간판이 많다고 해서 화려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날 낮12시16분 「황성옛터」의 배경 음악이 은은히 퍼지는 가운데 이범석 수석 대표와 함께「호텔」 복도에 들어선 북 적 김태희 단장은 『서울 거리의 첫 인상이 어떠냐』는 질문에 미소를 짓고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섰다.
북적 대표단의 홍일점인 이청일 대표는 『동포가 열렬히 환영해주어 감사히 생각한다』고 말했다.
「레닌」모를 쓰고 인민복을 입은 윤기복 자문위원은 서울의 인상에 대해 『차차 말하지오』하고 말을 끊었다가 『좀 복잡한 것 같고, 연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환영해주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노동신문의 이성복 기자는 『남쪽에 들어서면서 열렬히 환영해주어 감개가 무량하다』고 말하고 『같은 동포니까 그렇지, 외국인이면 이렇게 환영할 수 있었겠느냐』면서 낯익은 판문점 출입 기자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연도의 서울 시민 손 흔들어 인사도>
북한 대표단 54명이 지나는 길목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서울 자0-856호 검은색 「캐딜락」의 대표단이 탄 차들이 서대문구 박석고개에서 불광동을 거쳐 서울 시내로 들어서자 두 손을 흔들었고 더러는 박수를 치기도 했다.
북적 대표단 김태희 단장은 「캐딜락」뒷자리의 오른편에 앉아 얼굴에 웃음을 띠고 두 손을 마주잡고 흔들어 시민들의 환영에 답하기도 했다.
12시5분쯤 대표단들이 탄 승용차가 독립문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사직 「터널」로 들어가자 시민들은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이때 서울 영5-7531호와 서울 영5-7532호 2대의 「버스」에 나누어 탄 기자단과 수행원들이 창문을 열고 두 손을 흔들었고 「카메라맨」은 고개를 내밀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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