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사상 첫 중단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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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896년부터 1972년까지 76년간을 이어온 「올림픽」운동은 그동안 세계평화를 위한 젊은이들의 제전으로 성장해 왔으나 그 밑바닥에는 3차의 「올림픽」유산과 「데모」대의 난동 등 불상사가 수 없이 깔려있다.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만 해도 「트리쿠피스」수상의 실각으로 한동안 옥신각신 끝에 대회를 치를 수가 있었으며 1916년 제6회 「베를린·올림픽」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중단, 「올림픽」시작이래 최대의 위기를 몰고 왔다.
1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밀려 닥친 세계평화 「무드」속에 「올림픽」이 그런 대로 성황 속에 개최되다가 정지 「쇼」의 냄새로 말썽이 많았던 36년 「베를린·올림픽」이 끝나자 「올림픽」은 또 다시 수난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40년 제12회 일본 동경 「올림픽」과 「삽보로」(찰황) 동계「올림픽」은 38년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헬싱키」와 「상·모리츠」로 개최지가 변경되었으나 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이마저 중단되는 비극을 겪어야만 했고, 44년 제13회 「올림픽」도 전쟁의 여파로 희생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듯 수난만을 겪어 온 「올림픽」은 여지껏 외면만 해오던 공산권의 종주국 소련이 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부터 참가, 드디어 세계평화운동의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러나 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는 아프리카 및 미국흑인선수들의 「블랙·파워」와 학생「데모」가 회오리바람을 몰고 와 「올림픽」운동의 전도가 크게 흐려진 후 이번 「뮌헨」은 정치문제를 내세운 중공의 계속 불참과 「로디지어」축출 속에 경기를 진행 중 「아랍·게릴라」들의 만행으로 「올림픽」사상 최악의 오점을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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