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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욱의 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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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기독교사』(고 김양선 목사 저)를 보면 평양은 『한국의 「예루살렘」』으로 서술되어 있다. 「런던」이 선교회파견 중국선교사 「로버트·J·토머스」목사는 1866년9월3일 평양의 대동강 상에서 순교했다. 『한국기독교는 실로 그 순교의 피 위에 건설되었다』고 김 목사는 비장하게 기록하고있다.
당시 「토머스」목사는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황해도 백령도와 대동강 연안을 배회했었다. 한문성기와 보도문서가 처음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이때이다. 그가 순교한 이른바 「셔먼」호 사건은 마침내 자국을 중심으로 개교의 실마리가 되었다. 대동강은 복음서가 전달되는 『신앙의 강』구실을 한 것이다.
그후 평양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소일전쟁의 격전지가 된 것은 교회분산의 「아이러니컬」한 계기가 되었다. 평양선교의 공로자인 「모페트」목사의 기록을 보면 그 전란 통에 『「예루살렘」의 초대교회가 「로마」의 박해로 여러 지방에 분산된 것과 흡사한』 경우가 되었다. 평양의 교회는 지방의 산문 깊숙이 스며들어 갈 수 있었다.
이런 부통은 평양을 신교의 중추로 만들었다. 오늘날 기독교의 중요한 세력으로 발전된 「숭실」파도 바로 이 평양에서 비롯되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우리 나라의 교회사를 보면 훌륭한 종교인들이 평양을 중심으로 많이 배출되었다.
한국 동란 후 이북의 교회사석은 짐작되는바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러는 궁금했다. 소련엔 「스탈린」의 그 냉혈정책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교회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교의 어간에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더러는 없지 않다. 그래도 「러시아」의 전통 깊은 그 정교회는 오늘날까지 정중한 「미사」를 거르지 않으며 여러 가지 종교의식도 그대로 지키고 있다. 물론 교회를 유지할만한 신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런 사정은 북한의 종교 상황에 대해서도 어떤 희망을 버리지 않게 했었다.
그러나 이번 한적 대표단의 평양방문에서 그쪽의 교회가 황막한 지경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더없이 서운한 일이다. 지금 우리의 귀에도 낯설지 않은 한 원로 목사(?) 강양욱은 대동강을 굽어보는 만경대에 서서 오늘의 초토화된 북한의 기독교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교회까지도 파괴하는 신을 믿으려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지극히 단순하고 이기적인 전관 이기적인 신권-고희에 가까운 이 황혼의 인생이 생각하는 신은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는 이 목사의 궤변을 들으면서 적막감을 누를 수 없다.
인간의 내면에 호소하는 종교까지도 뿌리를 필수 없게된 그 토양은 어떤 것인가? 한편 순교를 무릅쓰던 기독교인들의 그 불타는 신앙은 어디로 사라지고 말았는가? 북한의 현실은 거듭 착잡한 감회만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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