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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숲 속의 회관에서 차분한 자세… 첫 대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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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평양30일=대한민국 신문·통신 공동취재단】평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첫 아침을 맞았다. 30일 상오 10시 겨레끼리의 대화를 위해 남북적십자 본회담의 첫 회의가 열린 2층 건물의 대동강회관은 말끔히 단장됐다. 장방형 탁자를 사이에 놓고 남북적십자 대표들은 각각 양쪽에 7명씩 맞대 앉아 통역이라곤 아예 있을 수 없는 순수한 겨레끼리의 말로 단절 27년 사이 빙벽처럼 막혔던 말문을 텄다. 이날 평양의 날씨는 구름이 많이 끼고 흐려 기온은 23도 가량이었고 대동강 물도 맑지는 않았다.
남북적십자 양측대표단은 30일 상오 9시58분 북쪽 문을 통해 회담장에 들어섰다.
양측 일행은 각각 수석대표를 선두로 20여「카메라맨」의 「플래쉬」를 받으며 회담장 안에 들어가 「메인·테이블」에 마주앉았다. 한 걸음 앞선 듯한 북한적십자 김태희 단장은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범석 수석대표는 가벼운 긴장과 기대감을 담은 신중한 표정이었다.
회담장 남쪽과 북쪽에 마련된 참관인 석에는 9시30분쯤부터 자리가 찼고, 양측 수행원들은 5분전에 입장, 자리를 잡았다.
양측 자문위원들은 대표들이 참석한 뒤를 따라 입장했다. 북한적십자 김태희 단장은 10시 정각 앉은 채로 개회연설을 시작했다. 김 단장은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연설은 「마이크」장치를 통해 기자실과 각 「부드」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기자참관실의 좁은 창구에 몰려있는 외국 기자들에게는 북한안내원 1명씩이 붙어 통역을 해주었다.
김 단장의 연설은 25분간 계속됐으며 박수는 없었다.
그 뒤를 이어 대한적십자 이범석 수석대표는 김 단장과는 대조적인 설득조의 목소리로 첫 연설을 했다.
연설이 계속되는 동안 옥색과 연분홍색 짧은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자접대원 5, 6명이 분홍색 오미자차 등 음료를 양측 대표단에게 내놓았다. 북한적십자 조명일 대변인은 이 수석대표의 연설을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이 수석대표의 연설은 약 16분간 계속됐다.
이 뒤를 받아 김태희 단장은 남북 본회담을 축하 격려하기 위해 모인 각 정당·사회단체 대표의 축하연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노동당을 대표하여 당 중앙위원 겸 공업교육부장인 윤기복 자문위원을 지명했다.
이날 축하연설을 한 사람은 모두 8명이었다.
축하연설이 시작되자 차분하던 회담장은 열도가 오른 듯 연설이 계속된 상오 10시42분부터 55분까지 약 15분간 세 차례나 박수가 터졌다. 박수에는 참관인은 물론 북한적십자 대표단과 자문위원들도 합세했다.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은 발언대에서 연설했다.

<장내 환히 밝혀 정 여사의 한복>
우리 대표들은 서류를 뒤적이기도 하며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측 홍일점 정희경 여사는 노란색 긴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나와 회담장 안을 밝게 했다.
북한대표단의 홍일점 이청일 대표는 미색 치마저고리(치마는 짧은 통치마)를 입고 있었다.
참관인 석에도 10여명의 북한여성이 보였다. 대부분 흰색 저고리, 검은 통치마, 회색 저고리에 검은 통치마 차림이었고 분홍색 저고리도 있었다.
이청일 대표와 다른 여성참관인의 머리는 머리 앞부분을 뒤로 빗어 넘기고 윗머리는 빵떡처럼 크게 쪽져 있었다.

<북의 쪽진 머리 묻자 "현대화 표시죠">
저게 무슨 머리형이냐고 묻자 여성 접대원들은 『조선여성의 전통적인 머리모양이기 때문에 별다른 이름은 없다』고 말하고 『기혼여성이 머리를 올려 쪽지는 것을 현대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여자접대원은 젊은 여성들은 짧은 머리에 「퍼머」를 하지만 중년이 지나면 그런 머리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북한적십자측의 축하연설은 상오 11시55분에 모두 끝났다. 연설내용은 「위대한 수령」의 말을 연거푸 인용, 「민족단합」「자주통일」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정치색이 짙어 보였다.
연설이 끝나자 주창준 북한적십자 부단장이 북한 안의 일부단체와 북한과 관계 있는 다른 나라에서 보내온 축하전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김일성대학 교직원·학생 등 명의로 된 전문은 모두 장문이어서 4통을 낭독하는데 15분이 걸렸다.
이어서 북한적십자 조명일 대표는 이날 아침 양측 실무회의에서 합의한 본회담 의제에 관한 합의문서를 낭독했고, 우리측에서는 이 합의문서를 정주년 대표가 다시 낭독하여 합의, 각각 서명한 뒤 수석대표를 통해 교환했다.

<"서울 오면 환대하죠" 낮 12시57분 폐회>
이어 이범석 수석대표는 본회담 의제가 확정된 것을 치하하고 대한적십자측 자문위원을 대표하여 김준형 위원이 축하연설을 하겠다고 제의했다. 김 위원은 낮 12시30분부터 8분 동안 『인도주의에 입각, 본회담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이어 김태희 북한적십자 단장이 인사말을 한 뒤 이범석 대한적십자 수석대표에게 『발언할 것이 있으면 말하십시오』라고 권했다.
낮 12시42분 이 수석대표는 오는 13일 서울회담에 북한적십자 대표단과 기자단이 오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인사말을 했다.
김태희 단장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낮 12시57분 역사적인 제1차 본회담의 폐회를 선언했다.

<우리 대표 기념촬영>
양측 대표단과 자문위원들은 각각 악수를 나누고 퇴장, 휴게실에서 약 30분 동안 쉰 뒤 헤어졌다.
우리측 대표단과 자문위원들은 회담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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