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군 영춘면 수해현장 르포|토사더미… 흔적 잃은 한 마을 1백70호|단양 수해현장=김재봉·조원환·이을윤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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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탁류에 휘말려 고립됐던 단양군 일대에 대한 집중적인 구호가 지난 26일부터 진행되고 있으나 남한강 물길이 할퀸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 수재민들이 「헬리콥터」로 지원받은 양식은 가구당 밀가루 2되 정도와 라면 2봉지, 보리쌀 1되 가량. 영춘면 상리 1구 이용림씨(25·여)는 어린것들이 하늘에서 「헬리콥터」소리만 나면 부근 중학교 운동장에 모여들어 공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하지만 아직도 양식의 절대량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단양군에서도 가장 혹심한 피해를 본 영춘면 하리 마을은 1백90채 중 1백74채나 물길에 휩쓸려 떠내려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고 아직도 강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아 남은 16채마저 밑 부분이 씻겨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온 동네가 폐허로 변했다.
탁류가 휘몰고 온 엄청난 토사는 마을 전체를 덮어 27일 하오에는 주민들이 가재도구를 찾으러 마을로 들어갔으나 내 집·이웃집을 구별할 수 없어 마당에 심었던 감나무 또는 대추나무의 끝부분을 보고 자기 집을 확인하고 있었다.
동네에 10여개나 있었던 공동우물은 우물지붕 위까지 흙이 쌓였고 7m의 높이로 남한강과 마을을 구분했던 둑은 이제 9m 가까이 올라가는 등 마을의 지형마저 바꿔놓았다. 이곳에 오래 살아온 주민들조차 달라진 마을모습에 어리둥절했다.
현재 영춘면으로 통하는 유일한 육로는 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에서 남한강을 끼고 삼대산 기슭을 따라 뚫린 오솔길뿐이다. 이 길마저 중간에 6군데가 끊기고 산사태로 묻혀버려 70리 길을 걸어가야 하며 마을 앞에 이르러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다.
사지원리에서 하리 나루터에 이르는 길에는 범람한 남한강의 수위를 말해주듯 강 벼랑 30m위 가로수에까지 흙탕물이 밀고 온 널빤지, 빨래조각 등과 오물들이 걸려있었다.
하리 마을 앞 도선장에서 만난 뱃사공 함영하씨(46)와 박경철씨(26)는 섬사람들이 육지 손님 반기듯이 외래객을 보고 어쩔 줄 모른다.
함 씨는 누구든지 현지참상을 보고가면 구호대책이 하루 속히 진행될 것이 아니냐며 빠른 구호를 거듭 부탁했다.
하리마을 나루터의 명물이던 2백년 묵은 느티나무와 정미소는 간 곳이 없고 흙탕물에 떠내려가던 원동기만 아무렇게나 뒹굴어져 있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이 강가로 몰리자 마을전체가 흡사 어느 해수욕장 같았다.
백사장에 1백여개의 천막이 세워져 있고 모래우물에는 어린 소녀들이 흙물을 가라앉혀 물을 길고 있다.
60평생 이번 같은 물난리는 처음 당했다는 김진한씨(60)는 18일 하오부터 강물이 불어났으나 대수롭게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 19일 하오 2시쯤 마을 앞 방앗간이 제일 먼저 침수되더니 30분 동안에 마을이 이 꼴이 됐다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번 물난리에 돼지 4마리, 닭 1백여 수 등 가축들을 모두 잃은 손남균씨(32)는 7식구를 동원, 주춧돌만 남은 집터에서 썩은 감자를 주우면서 감자떡이라도 해먹어야 하겠다고 했다.
상리 1구 농협창고 앞길에 쌓아 둔 밀 5천여 가마가 썩고 있어 술 냄새가 마을 전체를 덮고 있었다.
면 당국자는 아직 영춘면에서는 질병 같은 것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간이 상수도 물이 흐려 먹을 수 없다면서 강가에 모래우물을 파놓고 이 물을 먹고 있었다. 주민들은 보리쌀이라도 충분히 공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26일 현재 군 당국의 집계로는 영춘면이 이재민 l천9백47명에 6억6천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으며 가곡면은 이재민 9백89명에 재산피해가 2억7천여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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