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정현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말이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크게 달라진다. 그 뜻이 달라지는 것도 물론이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령, 우리가 흔히 쓰는 명구에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게 있다. 예술가의 일생은 짧지만 그가 남긴 작품의 생명은 영원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을 제일 먼저 했다는 「히포크라테스」는 그런 뜻으로 쓰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사람의 일생은 짧고 기술(arts)을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타일렀을 뿐이다.
지난 얼마 전 중국 신강성에서 발굴된 당대 초기고분에서 논어의 이른바『정현(후한시대의 대학자)「텍스트」』가 발견됐었다. 그것도 12세 소년이 서당에서 배운 대로를 필사한 진기한 원본이다.
이것을 보면 공자의 말도 상당히 곡해되어 온 것 같다. 외신에 의하면『조문도 석사가의』라는 귀절이 정현「텍스트」에서는 군자란 늘 도를 찾아 언제까지고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오늘날까지 아침에 도를 밝힐 수만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고 풀이해 왔다.
원래가 「논어」란 공자의 제자들이 후에 엮은 언행록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구어체였던 것이 여러 시대를 거치는 동안 많은 주석들이 나오고, 그 사이에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바와 같은 문어체로 바뀌어졌을 것이다.『여조문도, 칙석수사가의』가『조문도,석사가의』라고 간결한「리듬」을 탄 말로 바꾸어진 것도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정현의 주해본은 논어의 정본이라고도 할만하다. 따라서 논어의 연구에 신기원을 획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학계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현「텍스트」라고 공자의 말뜻을 완벽하게 정확히 전해주고 있다고 얼마만큼이나 믿어도 좋을는지.
『오늘의 삶을 다 알지도 못하는데 하물며 어떻게 내일의 죽음을 얘기할 수 있겠느냐』, 또는『신을 모시는데 있어서는 마치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면서 모셔라』라고 말한 공자는 분명 현실주의자요, 회의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런 공자와 어제까지의 우리네 유학자들이 키워낸 공자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 중국에서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 받았으면서도 맹자조차 공자의 그늘 밑에만 머물러있지 않았다. 순자는 공자와 대립되는 노장사상까지 받아들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권력에 밀착되었던 주자학만이 학계를 주름잡았었다. 송시열에게 비판적이던 윤백호는 비극을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네 학계는 내내 발전의「에너지」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공자학에만 한정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