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만원 수용소…뜬눈의 사흘 밤|「재기의 집념」은 꺾이지 않았지만…|각계서 구호품 절대량 모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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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따스한 구호가 아쉽다. 물난리 후유증 사흘째를 맞은 이재민들은 초만원의 수용소에서 지친 몸을 웅크리고 따스한 구호를 애타게 호소하고있다.
악몽 같았던 8·19 물난리에도 수재민들은 재기의 집념이 꺾이지 않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한 조각의 빵과 갈증을 가시게 할 한 모금의 물이 아쉬운 것이다.
그러나 사흘 밤을 비좁은 수용소에서 거의 뜬눈으로 지샌 22일 상오에도 각 수용소의 수재민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한둘씩 물이 빠진 집터를 찾아 복구작업대열에 나서고있으며 구호의 대열이 줄을 이어 한 핏줄간의 흐뭇한 사랑의 일면도 보이고 있다.

<라면으로 끼니 때워>용산구
용산 국민학교 교실 5개에 수용돼있는 용산구 한강로 2가2 일대 이재민 6백50명은 지난 19일 수용되던 날 1인당 라면1봉지씩을 공급받고 20일에는 밀가루 2kg씩 받아 허기를 면하고 있다.
1교실에 70여명씩 수용돼있으나 교실마루 바닥은 신울 신은 채 드나들어 먼지투성이.
전상희씨(33·한강로 2가2)는 주로 어린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있다고 했다.
또 삼각지교회에 수용된 한강로 2가293 이재민들 1천8명은 20일 밀가루10부대가 구호품으로 나왔으나 많은 이재민이 나눌 수 없어 그냥 두고 있다고 했다.
교회수도전 1개는 1천여명이 갈증을 풀기에 너무 부족하다는 것.
심덕규씨(37·한강로 2가293)는 「시멘트」 바닥에 담요를 깔고 생후 23일된 젖먹이 여아를 눕혀 놓고 있었다.
오남국민학교에 수용된 한남동107일대 이재민들은 한남동 일대 수도 물이 끊겨 당국에서 공급받은 라면도 끊여 먹지 못하고 날것을 먹었다.

<가마니 깔고 잠자>서대문구
서울 마포구 망원동 침수지역수재민 3천2백명이 수용되어있는 성산국민학교에는 2백여명의 수재민이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수용되어 있다·
이곳에는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아 3일 동안을 어둠 속에서 지냈다.
재해대잭본부에서는 이들에게 하루 8천 개의 빵을 배급, 한사람이 한끼에 1개씩을 먹는다해도 필요한 천6백개에 미달, 빵1개를 2, 3식구가 갈라 먹어야하는 실정이다.
20일 하오 5시쯤 밀가루 98부대, 모포 48장이 대책본부로부터 나왔으나 밀가루는 전 수용민의 한끼 분도 안되고 모포는 너무 모자라 배급도 못한 채 거의 가마니를 깔고 잠을 잤다.
대한적십자사나 「라이언즈·클럽」등 각 민간구호기관에서 의류·라면 등을 보내오는 등 구호활동을 펴고있다.
그러나 워낙 절대량이 모자라 매끼에 라면과 빵 등이 배급되면 하나라도 더 받으려는 아귀다툼과 싸움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1층에 수용중인 김찬혁씨(51·망원동222)가 말했다.
또 학교마다에 설치된 수도전 5개는 19일부터 고장이나 식수해갈이 어려운데다가 수용인들이 부근의 지하수를 마구 마셔 어린이들의 배앓이가 계속 늘고있다.
매일 하오 1시부터 자선진료를 펴고있는 마포의사회(회장 전영환) 회원 남상숙 여의사는 하루 평균 10여명의 어린이 설사환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성산여중에 수용된 노진구씨(35·여·합정동3통6반)는 젖이 나오지 않아 3녀 미영양(1)이 밤새 보채자 할 수 없이 냉수에 설탕을 타 먹였더니 20일부터 설사를 시작했다면서 병을 앓더라도 우선 먹고 앓아야 되지 않겠느냐면서 당국의 구호를 호소했다.
각 수용소에는 변소시설이 모자라 수용인들이 학교운동장 아무 곳에서나 변을 보고 있어 악취가 몹시 풍기는 등 관할보건소의 주위소독도 아쉽다는 것이다.

<모자라는 구호품>성동구
서울성동구 군자동·송정동·능동, 동대문구 답십리4동 등의 수재민 4천3백여명이 수용돼있는 답십리 국민학교에는 21, 22일 이틀동안 구청을 통해 모포 90장, 이블 85장, 「매트리스」 85장, 남비 1백74개 등 구호품들이 도착했으나 수용된 가구 수에 비해 절대량이 모자라는 형편.
구청은 하루 이재민 1명에 라면1개, 빵과 건빵은 3명에 1봉지 꼴로 나눠주고 있는데 최순덕씨(53·여)는 21일 하오 7시쯤 집에 물이 얼마나 빠졌는가를 보러간 사이에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라면 등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약삭빠른 일부 상인들은 이를 이용, 수용소 입구에 빵·떡 가게를 차리기도 했다.
성동구청 직원 남종현씨(35)는 『침수지역의 물이 빠지고 주민들이 본격적인 복구에 나설 때 생활대책이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수재민들은 질병이 나도 의료진의 손과 약품이 달려 치료를 제대로 못 받고 있다.
답십리 국민학교에 수용된 원준희씨(33·성동구송정동74)의 장녀 종아양(3)은 지난 20일부터 고열과 설사로 앓았는데 21일 하오 5시쯤 수용소에 나와 있는 진료반을 찾았으나 약이 떨어졌다고 말해 되돌아갔다.
한편 천호지구 의료협회소속 17개 병원은 21일 하루 동안 이재민 환자 57명을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성동구 마장2동 이재민 1천7백6명이 수용 되어있는 서울 동명 국민학교에는 21일 하루동안 최해성씨(36·마장2동556)의 3남 삼섭군(3) 등 설사·감기환자 l백여명이 금호동기독교병원의 무료진료를 받았다.

<식수난 심해>영등포구
양평동 봉래 여중에 수용된 양평·신정·목동일대 3천여 수재민은 지난 19일 하오부터 21일 하오까지 3일 동안 구호양곡으로 『15원 짜리 빵2개와 라면1개씩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빈민인데다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홍수로 몸만 겨우 빠져 나온 이들은 구청에서 주는 빵2개와 라면1개로 3일 동안의 허기를 메우지 못해 김경본씨(22·양평1가225) 등 1백여 명이 21일 하오 6시쯤 영등포구청에 몰려가 구호를 청하기도 했다.
또 안양천변의 신정동·목동 5천여 가구도 침수 3일째인 22일 상오에도 처마 밑까지 들이찬 물이 빠지지 않은데다 수용소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1만2천여 주민들이 약4km 떨어진 안양천 둑 위에서 밤을 새고 있으며 식수난마저 겪고있다.
주민 염영애씨(37·신정동120의85)는 『밤만 되면「보트」를 탄 도둑 떼들이 마을을 뒤지고 돌아다니며 물건들을 훔쳐 가고 있어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신정동 염창동 목동 구로동 흑석2동 등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22일 상오까지 침수된 물이 거의 빠져 주민들은 물에 젖은 옷가지 등을 모두 꺼내 말리기에 바빴다.
물이 빠졌다해도 당장 들어가 살수 없는 형편이므로 주민들은 낮에는 복구작업을 벌이고 저녁에는 다시 수용소로 몰려들고 하는데 대부분 초만원인 실정이다.
일부 수재민들은 수용된 학교교실 안에서 석유곤로 등을 피워놓고 밥을 짓고 있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도 크다고 교사들이 걱정하고있다.·
이에 대해 구청당국은 구호품이 도착하는 대로 수재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으나 절대량이 모자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초만원수용소의 실정은 시민들이 점차 귀가함에 따라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가에 분산수용>경기도
【수원】가족과 집 등 가재도구를 잃은 경기도내 5만여 이재민들은 당국에 보다 적극적인 구호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친척집이나 이웃집에 분산수용, 당국의 구호품으로 간신히 연명하고있는 수원시내 7백46명의 이재민들은 수원시가 1백6채의 피해가옥 중 전파 1동에 3만6천원, 반파1동에 1만4천원 씩을 지급하기로 했으나 이 돈으로는 앞으로 살길이 막연하다고 말했다.
특히 28명의 목숨이 삽시간에 흙에 묻힌 수원시 남수동 이재민 1백87명은 대부분 영세민들로 정부의 적극적인 구호가 없는 한 앞으로의 생활대책이 막연하다는 것.
6천8백여명의 이재민을 낸 시흥군은 순식간에 일어난 너무나 엄청난 피해에 어리둥절, 이재민에 대한 긴급구호이의에는 별다른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시흥군관내 이재민들은 현재 광명국민학교에 1천2백84명, 덕정국민학교에 1백9명, 중앙교회에 1천명, 광복 「아파트」에 8백66명, 친척집 등에 1천1백50여명이 각각 분산 수용, 구호의 손길을 목마르게 기다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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