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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유기견의 삶과 죽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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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기견이 된 꾸유가 자신을 돌본 할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후에도 여전히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다. (왼쪽) / 할머니가 폐지를 수집하던 수레에 놓인 국화꽃.

따뜻한 집에서 나오기 싫어지는 계절입니다. 춥지만 갈 곳이 없는 불쌍한 친구들이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거리에서 떠돌다 차에 치여 죽거나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유기견(버려진 개)들이죠. 무서운 주사를 맞고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 전국에서 9만9254마리의 동물이 버려져 이 가운데 2만4315마리가 안락사(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죽게 하는 일)로 죽었어요. 버림받은 동물의 둘 중 하나는 안락사나 병으로 죽게 된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혹은 안타깝게 안락사를 당한 강아지들의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꾸유 가족이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장소. 동물사랑실천협회 회원들이 숨어있는 꾸유 가족을 구조하고 있다.

할머니와 꾸유 가족

강아지는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없는 동물이다. 하지만 기쁨·슬픔과 같은 감정이 없다거나 은혜를 모르지는 않는다. 지난 6월 길에서 발견됐지만 아직까지도 자신을 키워준 주인을 잊지 못하는 유기견 ‘꾸유’와 ‘예쁜이’ ‘뽀삐’가 바로 그런 강아지다.

꾸유·예쁜이·뽀삐는 가족이다. 꾸유가 아빠, 예쁜이는 엄마, 뽀삐는 딸이다. 셋 모두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10년 전 한 할머니가 길에서 떠돌던 꾸유 가족을 데려다 키우기 시작했단다. 할머니는 주인 없이 떠돌던 꾸유 가족이 불쌍해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재워주고 밥도 챙겨줬다. 비록 할머니 자신도 넉넉한 삶은 아니었지만 친자식처럼 강아지들을 열심히 돌봤다.

가난했던 할머니는 먹고살기 위해 낮에는 서울 중구 길거리에서 과일과 채소를 팔았고 밤에는 동네를 돌며 길에서 폐지(쓰고 버린 종이)와 고물을 수집했다.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온 할머니의 유일한 즐거움은 강아지들을 보는 것이었다. 가족 없이 살던 할머니에게 강아지는 자식·손자처럼 특별한 존재였다.

꾸유 가족 역시 할머니가 자신들을 돌봐준 은혜를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일을 나갈 때면 옆에 꼭 붙어 지켰다. 덩치가 작은 할머니에게는 든든한 보디가드와도 같았던 강아지들이다. 만일 낯선 사람이나 술에 취한 사람이 할머니를 괴롭히면 달려들어 동네가 떠나갈 만큼 크게 짖어댔다. 할머니가 길에서 주무시면 옆에 꼭 붙어서 함께 잠을 잤다. 머리도 좋아 평소에는 아무데서나 큰 소리로 짖지 않고 묵묵히 할머니를 따라다니기만 했다.

다른 애완견처럼 예쁘게 털을 고르거나 귀여운 옷을 입지는 못했지만 할머니와 함께한 10년은 꾸유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구출된 뒤에도 경계심을 풀지 않고 불안해하는 예쁜이·뽀삐·꾸유(왼쪽부터)의 모습.

그러던 중 불행이 닥쳤다. 지난 6월 할머니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이다. 원래 할머니가 살던 작은 집은 폐지와 고물을 수집하면서 온갖 물건으로 가득 차게 됐는데 여름이 되자 더워졌고 냄새도 심하게 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낮에 과일을 팔던 길가로 나가 노숙(길에서 자는 것)을 했다. 물론 할머니가 노숙하는 옆 자리에는 꾸유 가족이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폐지를 정리하고 하루 일을 마친 할머니가 길에서 주무시던 중 트럭에 치여 돌아가신 것이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꾸유 가족은 주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혹시라도 할머니가 다시 나타날까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할머니가 돌아가신 자리를 바라보고 하염없이 앉아 있거나 평소처럼 짖는 대신 슬프게 우는 듯한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기다릴 뿐이었다.

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꾸유 가족을 불쌍하게 여겨 데려가려고 하면 경계의 눈빛을 내뿜으며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말은 할 수 없는 동물. 그들은 “날 놔줘요! 우리 할머니한테 가야 해요”라고 말하려는 듯 보였다.

꾸유 가족은 다시 유기견이 됐다. 지금은 다행히 구출돼 동물사랑실천협회 입양센터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여전히 돌아가신 할머니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 겁에 질려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지만 서로 의지하며 조금씩 새 삶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뽀삐가 안정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 10초

지난달 13일 온라인 카페 ‘강아지를 사랑하는 모임’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유기견 ‘대박이’를 입양해 키우던 한 네티즌이 올린 사연이었다. 주인이 한눈을 판 사이 대박이가 집 밖으로 나갔는데 다행히 다음날 아침 근처 보호소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해 크게 다쳐 주인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바로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다쳤지만 보호소에서 늦게 병원에 보낸 탓에 결국 수술 도중 대박이는 숨을 거뒀다.

주인을 찾지 못한 강아지는 어떻게 될까. 모든 유기견이 꾸유 가족처럼 입양센터에 맡겨져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구조된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호소에 있으면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기간은 10일이다. 보호될 수 있는 기간 10일이 지난 후에도 주인이 찾아오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안락사를 당할 수 있다. 버려진 동물을 보호할 시설은 부족한데 이곳으로 오는 동물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탓이다.

강아지도 이런 앞날을 알까. 안락사를 앞두고 있는 강아지 중엔 눈에 눈물이 맺혀 있는 녀석들도 있다. 본능적으로 죽음을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안락사를 시킬 때는 강아지에게 마취제를 주사한 후 근육이완제(근육을 마비시키는 약물)를 놓아 고통을 최대한 줄여주는데, 일부 보호소에서는 마취제 없이 바로 근육이완제를 주사하는 일도 있다. 근육이완제를 주사하면 보통 10초~1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온몸의 근육이 풀리며 숨이 끊어진다. 하지만 마취제를 주사하지 않고 근육이완제를 놓으면 말 못하는 강아지는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숨도 쉬지 못하고 죽는다. 말 그대로 ‘죽음의 10초’다.

버려진 강아지들을 구하는 방법은 없을까. 보호 시설을 늘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라면 이들에게 구원의 손을 내미는 입양이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가족이 돼 주는 것이다. 다행히 요즘에는 강아지를 구입하는 대신 입양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는 “주인이 늦게 보호소를 찾아 이미 안락사한 강아지를 보며 슬퍼하는 경우도 자주 있어 안타깝다”며 “강아지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소중히 돌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김록환 기자, 사진=우상조 인턴기자
도움말=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

커버스토리 이어서 보기
▶ 새로운 가족이 돼 주세요
▶ 미도랑 같이 잘 때 느끼죠 이젠 진짜 가족이라고
▶ 자신에게 맞는 강아지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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