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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구조개혁으로 활력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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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선진국 경제의 회복세에 따라 수출 등 우리 경제의 지표들도 최근 완만한 개선을 보이고 있으나 국내 소비와 기업 투자의 부진은 지속되고 있다. 내년도 성장률은 올해보다 높아질 것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단기적·순환적 측면의 회복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매우 깊어져 있어 이대로는 장기적·안정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고령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 있고 가계저축률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실질임금과 가계소득이 정체되어 있으며 더 이상 줄일 수 있는 저축도 없어 구조적으로 민간소비가 살아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2008년 이전의 4%대에서 올해 들어 1.8% 수준까지 떨어졌다. 소비가 부진하니 공급을 늘릴 유인이 없고 투자 부진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외환위기 이후 이어져 왔으나 특히 지난 5년간 심화되었다. 그나마 2001~2007년 동안 연평균 3.9%로 노동생산성증가율(4.1%)에 근접하던 실질임금상승률은 2008~2012년 동안에는 아예 마이너스 0.3%로 돌아서 실질임금이 감소하는 현상을 보여 왔다. 이렇게 상당 기간 실질임금이 정체 내지 감소하는 현상은 경제개발을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반면 기업저축률은 크게 올랐다. 90년대에 12~13%대를 기록하던 기업저축률은 2010년 1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일본을 제외하면 최고로 높다. 저금리와 실질임금 정체로 기업 이윤은 개선되었으나 이것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90년대 20%대를 기록하던 가계저축률이 2011년 2.7%로 떨어진 것과 크게 대비된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가격변수는 노동의 대가인 임금, 자본의 대가인 금리, 부동산의 대가인 지가 및 임대료, 그리고 국내 재화와 해외 재화의 상대가격인 환율이라 할 수 있다. 이들 가격변수의 움직임은 그 경제의 활력과 경쟁력, 소득배분을 결정한다. 따라서 이들이 적정 수준 내에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경제운용의 기본적 과제다. 외환위기 이전 약 10년간 지나치게 가파른 임금 및 지가 상승, 두 자릿수의 고금리, 환율의 고평가로 가계의 실질소득은 빠르게 증가했으나 기업들은 부실해져 결국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특히 지난 5년간 이러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기업은 부유해졌으나 가계는 부실해졌다. 우리 경제가 다시 위기를 맞게 된다면 그때는 아마 가계발(發) 위기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은 주요 가격변수들의 재조정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조정은 이들을 결정하는 기저에 깔린 구조를 조정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단기적 통화, 재정정책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실질임금의 정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뿐 아니라 고용, 분배구조의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그동안 실질임금이 정체돼온 것은 대기업들의 고용이 줄어든 반면 임금이 낮은 사회복지 분야, 고령층, 여성,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고용이 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영업자 증가와 이들의 소득 하락은 가계소득의 정체뿐 아니라 소득분배를 악화시켜 왔다. 기업 이윤과 저축이 증가한 것도 일부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다수 중소기업의 재무상태는 오히려 악화됐다. 이러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과 더불어 노동시장, 공정경쟁 질서, 분배구조 등에 전반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대기업 노조의 경직성을 낮추어 이들이 정규직 고용을 늘려가도록 유도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이윤격차·임금격차를 줄여나가며, 임금체계를 개편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중소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촉진해 이들의 생산성을 높여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우리의 시장생태계와 금융부문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과거 일본의 은행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중소기업을 수시로 방문하며 그들과 함께 성장해 탄탄한 중소기업 기반을 형성해 온 반면 우리 은행들은 관치하에서 대기업 대출에 치중하다 위기 이후에는 가계대출·소비자금융에 몰두해 왔다. 창조경제와 중소·벤처기업의 발전은 금융부문 변화 없이는 이뤄내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적어도 5년 내지 10년간 꾸준히 추진해야 비로소 성과를 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경제구조가 지속되면 활력은 더욱 떨어지고 위기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여야 누구든 한국 경제호(號)에서 뛰어내릴 수는 없다. 그리고 5년, 10년 후 어느 정당이 정권을 책임지고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지금 서로 타협할 것은 하고 협력을 통해 지혜를 짜내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당면한 어려운 구조개혁 과제들을 풀어갈 수 없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