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행사장 돼버린 350억짜리 국제 규모 칠곡운동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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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억원을 들여 지은 경북 칠곡종합운동장. 전국 체육대회를 열겠다는 목표로 지었으나 2010년 말 문을 열고 3년 동안 도 단위 체육대회조차 한 건도 유치하지 못했다. [사진 칠곡군청]

운동장 건설비 350억원. 그러나 개장 후 3년간 번듯한 체육대회 유치 실적 0. 매년 나가는 시설 유지·보수비만 수억원. 이에 비해 1년 입장 임대수입은 10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

 2010년 12월 문을 연 경북 칠곡군 왜관읍 ‘칠곡종합운동장’ 얘기다.

 칠곡종합운동장은 면적 15만3000㎡에 400m 주로 8개짜리 육상 트랙, 천연 잔디 축구장, 300m 육상 주로 4개가 있는 보조경기장에 테니스장 8개 면을 갖췄다. 관람석은 1만9699석에 이른다. 규모로만 보면 국제경기를 치를 만한 운동장이다.

 이런 운동장을 인구 12만4000명인 군 지역에 짓겠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2년. “최신식 체육시설을 지어 전국 규모 체육대회를 유치해 자체로도 돈을 벌고 지역경제도 활성화시키자”는 의도로 추진했다. 2004년 부지 조성을 끝냈으나 사업비가 부족해 2007년 11월에 착공했다.

 건립에 들어간 돈은 국비 94억원과 칠곡군 예산 256억원 등 350억원. 운동장 하나 짓는 데 칠곡군은 한 해 자체 수입(880억원)의 30%를 쏟아부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10년 12월 문을 연 운동장은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전국 규모 체육대회는커녕 도 단위 대회조차 한 번도 유치하지 못했다. 군수배 축구대회, 지역 아마추어 야구대회 정도를 열었을 뿐이다. 3년간 이런 대회 유치 실적이 13건뿐이다. 한 해 평균 4건 정도다. 그 밖에 기업·단체 단합대회용 행사장이나 학교 운동부 훈련장으로 빌려주는 정도가 350억원짜리 운동장 활용도의 전부다.

 운영 수입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지난해 1142만원, 올해 현재까지 1230만원뿐이다. 행사용 등으로 빌려주고 받은 돈이다. 반면에 단순 유지·보수비만 해도 그 10배 이상이다. 지난해 1억7600만원, 올해에는 2억3400만원이 들었다. 시설 관리 인건비를 빼고 셈한 게 이렇다. 활용도가 의심스러운 대형 운동장 하나를 지은 때문에 매년 억대 예산이 솔솔 새어나가게 된 것이다.

 조기석(53) 칠곡군의원은 “칠곡군이 온 힘을 다해 전국 단위 대형 행사를 유치한다고 해도 수년에 한 번 정도뿐일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에 사로잡혀 대형 운동장을 지어서는 수백억원의 세금을 낭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칠곡군은 운동장에 돈을 더 쏟아붓겠다고 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17억원을 들여 조명탑을 세우고, 16억원짜리 전광판을 설치하고, 5억원짜리 성화대를 만드는 등 38억원을 추가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칠곡군 측은 “대한육상경기연맹 공인을 받아 전국 규모 육상대회를 유치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한두 차례 행사를 위해 재정자립도가 20%에 불과한 지자체가 지나치게 많은 예산을 쏟아붓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남대 백승대(사회학) 교수는 “자치단체장 치적 쌓기용으로 대형 행사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우선 주변 지자체와 기업·기관들을 접촉해 임대 수요를 늘림으로써 운동장 유지·보수비를 충당할 만큼 수입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칠곡=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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