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의 원류는 한국|일본 나량고송총 발굴책임자 망간선교교수와 문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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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금년 일본에서 최대의 관심사가 된 나 량「다까마쓰」총의 발굴현장책임자인 관서대학 「아보시·요시노리」조교수가 이에 관련해 내한, 우리 나라 유물·유적들을 답사 중이다. 지난 9일에 도착해 20일 귀국하기까지 경주·고령·부여·공주를 순방하고 또 서울의 여러 박물관으로부터 재료를 수집하는 그는 곧 이 벽화고분 문화의 원류를 더듬어 내기 위한 첫 작업. 일본 NHK가 특집「프로」로 계획한『민족의 원류』의 촬영 반을 동반하고 있다. 「아보지」조 교수는 경주·고령·부여 등지의 고분과 와 당을 조사하고『이제까지 책자를 통해 어렴풋이 느껴왔는데 이번 답사에서 그 강한 영향을 확인하게 된 것은 커다란 성과』라고 말하면서『그 점을 국민에게 알릴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 허심탄회하게 본대로 알려줘야 할 사명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기자가「아보시」조교수와 문답한 요지이다.
문=「아스까」고송총의 극 채 벽화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고고학 계에 새롭고 중요한 과제를 안겨줬다고 듣고 있다.
「아보시」교수는 그 고분벽화의 원류를 해명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알고 있는데 그 동안의 답사가 얼마나 그에 도움됐다고 생각하는가.
망간=고송총을 발굴하면서 처음 느낀 것은 동경이나 칼 및 관 장식 금 구 등이 퍽 한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신라문화의 강한 영향인데, 종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책자를 통한 것에 불과했다.
신라는 초기에 백제문화를 많이 받아 들였겠으나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신라 나름의 예술적 창조력으로 고도의 문화적 꽃이 피었다고 믿으며, 그 흐름이 그대로 일본에 상당히 유입됐음을 이번 답사에서 확인하게 된 것은 커다란 성과다.
문=지난 3월 발굴당시에는 고구려의 고분벽화와 상통한다는 말이 많았는데….
망간=벽화에 나타난 복식이 고구려 벽화와 유사하다고 해서 일부 학자와 그 동조자들이 그런 말을 많이 했는데 그림이란 시기와 장소에 따라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더 연구해야 할 과제다.
청룡·백호에 있어서 백제고분벽화와도 비교되어야 할 것이고, 또 신라고분은 계획적으로 발굴된 게 없으므로 알 수 없지만, 경주 삼릉의 도굴 때에 채색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하니 신라에도 상당한 벽화가 있을 가능성이 짙다.
고구려의 문화가 한반도 남쪽을 펄쩍뛰어 나량 지방에 이식됐다고는 믿기 어려우며 오히려 백제와 신라를 거쳐오지 않았는가 그 대체의 흐름이 추정된다. 고송총에는 고령고분의 여덟 잎 연화 문을 비롯해 부여·영주 등지에서와 같은 연꽃무늬의 그림이 없어 유감스럽다.
사실 어떤 설명적인 벽화보다는 문양이나 부장품을 통하여 문화의 흐름이 더 뚜렷하게 규명되는 것이다. 가령 고송총 현실에서 발견된 관 장식 금 구의 무늬가 그 한 예이다.
이 연화보상화문 금 구를 8등분하여 또 세부단위의 무늬를 살펴보면 신라 와전에서 얼마든지 발견되는 양식이다. 연화보상화문전편·당초 문 암막새·봉황문 기와 등 수두룩한데 이런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 무늬의 신라적인 유연 감에 있어서도 역시 일치한다.
문=한동안 일본에서 고송총의 그것이 중국문화의 직수입인 것처럼 얘기하면서도 이 벽화고분을 개기로 하여 최근 한국학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망간=전문가들 사이에는 한문화의 지대한 영향을 다 알고 있다. 다만 그러한 사실을 국민에게 알릴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나는 20년간 나 량 일대의 고분·사지 등을 발굴해 왔는데, 만약 누가 그 출토와 하나를 부여에서 가져왔다가 떨어뜨린 것이라 말한다해도 그렇게 믿어버릴 것이다. 그만큼「아스까」문화는 백제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이다.
고송총의 벽화 발견은 바로 그러한 사실을 국민에게 알려줄 기회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번 방한답사를 통하여 허심탄회하게 본바 그대로 일본국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으며, 더 구체적으로 연구해서 구명할 사명이 우리 전문가들한테 있다.
문=일본의 고분에서 벽화가 나온 것은 고송총이 최초라고 하는데 그 이전의 장식고분이란 어떠한 것인가?
망간=장식고분은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초반에 걸쳐 있었던 석관·석 병의 고분양식이다. 그중 벽화는 북구주의 고분에서 쇠꼬챙이 선각이나 원 혹은 삼각형을 그린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을 벽화고분이라 기는 곤란하다. 고송총 보다 조금 앞서는 시기에 백 회칠을 한 고분이 나 량을 중 심한 대화조정 영역내인 근 기 지방에 30기쯤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돌과 돌 사이에만 백 회를 넣었을 전면 회칠한 고송총과는 엄밀히 구분된다.
이번 한국에 와보니 경주나 고령고분이 모두 회칠 위에 작 화한 점 고송총과 상통되며 다만 규모가 좀 클 뿐이다. 일본에선 고송총에 비로소「벽화고분」이란 말을 썼는데 여기에 와보니 이미 그렇게 명명돼 있어 어휘상으로도 가까운 연관성을 느꼈다.
문=일본에선 요즘 그 주인공이 누구냐 때문에 논란이 많은 것 같은데….
망간=일반국민은 관심이 많겠으나 우리입장에선 그게 그리 대수로운 문제가 못된다.
우리가 이 벽화고분을 서기 7백년에서 전 10년 후10년으로 압축해 왕족계급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화장제도 직전 토 장 고분 말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천지천황=토장·671년 ②천무천황(천지의제)=토장·686년 ③초벽황자(부무의자)=토장·689년 ④지통(천지의여·천무의비)=화장·702년 ⑤문무부황(초벽의자)=화장·707년.
이러한 사실은 주인공을 암시해주는 근거가 돼 얘깃거리를 지어내게 하고 있다.

<고령에서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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