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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시위 10개 주로 번져 … 정부 기능 사실상 마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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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태국 반정부 시위대가 27일 방콕 시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한 시위자가 잉락 총리의 얼굴에 ‘×’ 표시를 한 사진을 들고 있다. [방콕 로이터=뉴스1]

태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며 잉락 친나왓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야권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7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시위는 수도 방콕뿐 아니라 유명 휴양지인 푸껫 등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다. 재무부·내무부 등 방콕 시내 5개 정부 부처를 이미 장악한 반정부 시위대는 이날 방콕 북부의 정부청사 단지를 포위했다. 대법원을 비롯해 국세청·이민국·국토부·특수수사국(DSI) 등이 자리한 곳이다. 특수수사국은 포위 직전 직원들을 철수시켰다. 남부 10개 주에서도 시위대들이 각 지역 정부청사 앞에 집결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푸껫 등 잉락 지지세력이 많은 지역에서마저 지방정부 청사들이 시위대에 의해 점거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반정부 시위대가 이처럼 정부 기능을 마비시키려 하는 것은 현 정부가 무력 진압에 나서도록 자극해 정권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려는 계산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반정부 시위대를 이끌고 있는 수텝 트악수반 전 부총리는 “의회 해산 후 선거 없이 각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국민회의를 구성하고 이들에게 새 총리와 각료를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요구하는 조기총선에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수텝 전 부총리는 제1야당인 민주당 출신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선거 없이 국민회의 구성을 요구하는 것은 정국 장악을 위한 전술이라고 풀이했다. 의회 의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잉락 총리의 집권 푸어타이당이 노동자·농민 등 서민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표 대결로 갈 경우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지지 기반은 보수 성향의 부유층과 고위 정부·군 관료, 왕정 복고론자 등 주로 권력층이지만 유권자 수에서는 열세다.

 태국 의회에서는 민주당이 제출한 잉락 총리 불신임안에 대한 토론을 26일부터 이틀간 이어갔다. 28일에는 불신임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잉락 총리는 의사당 밖에서 “현 정권은 친나왓 가문의 정권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의해 수립된 것”이라며 정당성을 강조했다.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자 ‘레드셔츠’로 불리는 잉락 총리 지지자들도 방콕의 한 체육관에 집결해 행동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레드셔츠 지도자인 자투포른 프롬판은 “지금까지 거리 진출을 자제해 왔지만 이젠 한계점에 달한 것 같다”며 “쿠데타의 조짐이 보이면 친정부 가두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 법원은 수텝 전 부총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경찰은 체포를 공언했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대에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는 수텝을 잡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수수사국은 이미 그를 기소한 상태다. 수텝이 부총리 재직 시절인 2010년 잉락의 오빠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해 90여 명을 사망케 한 혐의다.

 시위가 연일 격화되자 한국과 미국·중국·일본·프랑스 등 23개국은 26일 자국민에 대한 태국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지금까지 태국 여행 자제령을 내린 나라는 총 68개국으로 늘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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