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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구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얼마전 내가 집에 내려갔을 때 내고향 낙도에 어린이를 위한 영화상영이 가난한 마을학교에서 있었다.
거의 10여년 만에 처음 들어온 영화인만큼 어린 국민학생들의 호기심과 기대는 실로 표현할 수 없을이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항상 늦잠만 자던 동생이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 오늘 우리학교에서 영화한다고 했어. 엄마도 같이 가, 보고싶지 않아. 』이렇게 묻는 것이다.
「엄만 오늘도 바쁜데 어쩌지. 네가 잘 보고 와서 엄마한테 말해주렴.』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학교를 갔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동생의 발걸음은 무척 무거워 보였다.
『영화구경은 재미있었겠지?』하고 물으니 뭔가 실망한 듯한 얼굴로 영화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된지 3∼4분도 채 못 되어서 「필름」이 끊어지고「필름」을 다시 이었을 땐 벙어리 영화가 계속이었다는 것이다.
화면은 흑판 4분의1정도 배경으로 이리저리 흔들리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고 나중에는 이구석 저구석에서 6학년학생들이『저런게 새마을운동야』『저걸 영화라고 구경시켜주는 거야』『공짜는 다 그렇구나』하고 떠들어대는 통에 2시간 이상이나 돌릴 것을 30분도 못 돌리고 중단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영화상영이 오죽했으면 이런 소리가 어린 그들의 입에서 나왔을까 생각된다.
그래도 낙도를 위해, 낙도어린이를 위해 보여준다는 영화가「엉터리」라는 소릴 듣게끔 되었다니 왠지 우리사회의 문화혜택이 어느 한곳으로만 기울어져 있는 것만 같아 일종의 분노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른다.
이런 영화가 도시의 어느 학교에선 상영될 수 있겠는가?
낙도 어린이의 눈과 마음은 순진하다.
어린이 사랑은 허울좋은 말과 형식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모두가 하루 속히 깨우쳐야 할 것 같다.
이기숙 (충남 대전시 선화동 3구 334번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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