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 용어의 통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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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일 국무회의는 올해부터 3년 동안 과학 기술 용어의 통일을 위해 한국 과학 기술 단체 산하 1백19개 학회를 동원하여 48만1천 단어를 새로 심의, 제정키로 의결했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현재 학계·산업계·사회 일반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과학 기술에 관한 용어가 대부분 일본어 그대로이거나 아니면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번역한 것이어서 과학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국어 정화 대책에도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현재 정부기관이 사용하는 것도 부처마다 다르다. 문교부 발간의 과학 기술 용어집, 상공부의 한국 공업 규격 용어, 건설부의 건설 용어 사전, 체신부의 체신 용어집, 농촌 진흥청의 한글 농업 용어집, 원자력청의 원자력 의학 및 농학 용어집 등으로 나뉘어져 전혀 통일성이 결여되고 있다. 따라서 과학 기술 용어가 동일 단어에 있어서도 이처럼 부처마다 달라 혼선을 빚어왔기 때문에 이의 통일은 시급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이와 함께 사회 과학 기술 용어도 통일되었으면 한다. 사회 과학의 기술 용어도 서로가 달라 다른 계열과는 의사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고, 법률 용어나 공문서 용어 등도 한글화 이후 무슨 뜻인지 식별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법원에서는 등기 용어와 호적 용어 등 법률 언어를 한글화하기 위한 시안까지 발표한 바 있으나 그 뒤에 흐지부지된 것으로 보인다. 그 정확한 이유는 잘 알 수 없으나 법률 용어의 통일이라는 점에서 아쉽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법원과 검찰·법제처도 이번 기회에 법률 용어를 통일해야 할 것이요, 다른 부처도 사회 과학 용어의 통일에 관한 노력을 계속 경주해주기 바란다.
다만 자연 과학이나 사회 과학의 기술 용어 통일에 있어서는 다음 몇가지 점에 유의해야만 할 것이다.
첫째로는 과거에 행해졌던 것과 같은 「날틀」식 용어를 신조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한글 문법에 있어서 해방 후 4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문법 파와 말본 파가 엇갈려 통일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매 지나친 신조어는 국민의 혼란만 가중케 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무리한 조어를 절대로 만들지 말도록 해주기 바란다.
둘째로는 용어의 통일에 졸속을 피하여야만 할 것이다. 현재의 과학 기술 용어 중에는 대학 과정에서 원어를 쓰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들 원어와의 상관 관계를 생각하여 졸속적인 한글화를 피하고 전체적인 합의에 도달하도록 하여야만 할 것이다. 또 통일 후의 사용에 있어서도 신속한 사용에만 집착하지 말고 중·고교 학생에서부터 점차적으로 시행하기 위하여 교과서 개편부터 시작할 것이오, 무리한 강행은 삼가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처는 「과학 기술 용어집」 완성을 위한 계획과는 별도로 금년 안에 일상 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토목·건축·전기 등 분야의 용어를 골라 약 5천 단어로 된 「생활 기술 용어집」을 발간하기로 했다 한다. 이 계획은 일상 생활에 있어서의 과학 기술 용어의 통일을 위하여 절실하다 하겠으며, 앞으로 외래어에 대한 한국적 표기도 생활화하는 방안으로 「생활 외래어 집」을 발간하는 것도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해방 후 27년이 경과한 오늘까지 일본식 용어를 계속 쓰고 있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수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우리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각종 용어에서 외래어 티를 없애고 이를 정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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