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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애정과 체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요즘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8백m 체능 검사와 여학생 졸도 절명 사건들을 신문에서 읽으며 나는 어딘가 잘못 되어 가고 있는 우리 나라 체육의 정의에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진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속을 소녀들의 신체 조건이나 기력의 세심한 배려 없이 획일적으로 달리게만 한 당국의 체육 태도는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진다.
더우기 지난번 청룡기쟁탈 고교 야구 경기에 있어 경북 고교의 투수 황군의 경우를 들었을 때 나는 정말 분노와 두려움에서 그 학교 체육 담당자들의 생각을 이해할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 학교 야구 감독의 패자의 변을 신문에서 읽으면 황규봉 투수는 운동경기가 있을 한달 전부터 신경 장애를 일으켜 내내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기가 있은 바로 전날 밤에도 수면제를 먹여 잠을 재워야 했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한 학생을 수면제를 먹여서 잠을 재워야 할 정도로 건강의 장애를 입고 있는 학생을 어찌해서 굳이 경기장에 내보내서 모교의 명예라는 무거운 멍에를 지워야 했던 것인가?
청년들의 열기가 불꽃을 튀는 그러한 경기장에는 건강한 몸으로도 마음이 울렁거리게 된다는데 한달 동안의 신경앓이로 하여 극도로 쇠약해 있는 황군이 지난밤의 수면제 복용의 영향까지 받아 만약에라도 경기장의 분위기에 압박을 받아 갑작스런 증세라도 일으키는 사태가 일어났다면 둘레의 책임자들은 어떻게 감당하려 했던 것일까? 실로 모골이 송연하지 않을 수 없어진다.
경기에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될 것이 아니다. 모교의 이름에 책임을 느껴 신경을 앓아 온 학생으로 하여금 그 증세의 원인을 제거해 주고 안심을 시켜서 심신의 건강을 돌려주는 일이 스승으로서 모교로서의 애정이 아니었겠는가? 그리고 황군의 부모는 어찌해서 신경의 건강을 잃은 자기의 아들에게 그토록 벅차고 무거운 짐을 지워야 했단 말인가? 아들이 운동선수란 자랑을 갖고 싶어서였단 말인가? 우승 깃발 앞에서는 모교도 스승도 어버이도 건강이 부실한 학생이나 아들에게 그처럼도 가혹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참으로 가공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진정 이러한 소식이 들릴 때마다 자기의 자녀를 유명한 「가」를 만들기 위하여, 또는 일류교에 넣기 위하여 그 아들·딸의 자질이나 힘의 상태에 맹목하는 부모들이 아직도 있지나 않은지 우리들의 2세 건전을 위하여 염려되지 않을 수 없어진다.
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실수로서 모교의 불명예를 입게 한데 대한 책임감으로 하여 앓는 신경을 더욱 가책하고 있지나 않은가 싶은 황규봉 투수의 심경이 염려되고 애처로와 그렇게도 가혹할 수 있었던 둘레 어른들의 무사려한 허영심이 분하기 그지없어질 뿐이다.
이영도<시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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