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미 도입의 이월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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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미공법 480호 등에 의해 올해 안에 미국으로부터 들여오기로 계약했던 쌀 80만t의 도입을 내년으로 이월키로 하고, 이 문제를 미국측과 절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방침을 굳히게 된 배경으로서는 올들어, 정부미의 판매가 매우 부진한데다가 보관능력도 달리게 된 사정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으며, 이 때문에 올 양곡관리 특별회계의 세인재원의 결함은 1백68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만일 현상의 사실이 지난 수년간 해마다 2억달러 이상의 외각을 들여오지 않을 수 없던 우리의 식량수급사정의 호전을 못하는 것이라면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외미 도입과 쌀소비를 되도록 억제하고자 노력해왔던 정부 방침이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이 경우 걱정되는 것은 다만 외곡령입량의 감축으로 초래될 세인재원의 결함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하는 봉책 만이 남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식량정책의 일관성 없는 전개가 시사해 주는 문제의 복잡성은 당국 스스로가 해명하고 있 둣이 단순히 쌀 소비감소-정부미 판매부진-외곡도입량 감축이란 도식으로써만 단순화 시키기는 어렵다는데 있다 할 것이다.
첫째, 근간 정부의 고미가정책과 혼분식 장려로 농민의 생산의욕이 고취되고, 쌀 소비가 상당히 줄어들고 있음은 사실이라 하겠으나 정부미의 판매부진을 곧 그 만큼의 쌀소비 경제성의 감소로 단정할 수 있겠느냐 하는데는 여전히 큰 의문이 있는 것이다. 정부방출미의 상당 부분을 외미가 차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방출미의 구매를 기피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식성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런 의문이 짙은 것이며, 그 구체적인 실증은 앞으로 추곡이 나오기까지 좀 더 두고 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으로 이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로서 기본적인 농업통계의 신빙성 결여를 새삼스럽게 지적하지 앉을 수가 없다. 지난 5개월 간 정부미가 예년의 절반인 월 40만섬 정도밖에 팔리지 앉았다는 실적을 놓고 볼 때, 작년도의 미각생산량 통계가 과연 믿을만한 것이었는지 묻고 싶은 것이며, 만일 작년의 통계가 정확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재작년의 통계 및 그에 근거한 작년도의 외미도입량과의 연관성을 거듭 묻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한 수긍할만한 해답이 없이는 한해에 3억달러 (71년)나 외곡을 들여오고서도 빈번한 쌀값파동을 겪였던 작년도와, 별안간 정부미의 판매부진이 쌀 소비의 절대량감소로 지적되고 있는 작금의 수급상황을 명백하게 실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보도와 같이 40만t의 외미도입을 내년으로 미룰 경우, 파생되는 재정적 문제의 심각성 또한 큰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당장 금년산 추곡의 매상가격 및 매상운에 견제 작용을 하게 됨으로써 모처럼 본격화하기 시작한 고미가 정책의 궤도에 어떤 수정을 강요하지 않을까 염려됨은 물론이거니와, 고미가정책을 기정방침대로 강행할 경우, 가뜩이나 조세미수의 저조로써 「인플레」추세에 직면한 위정정책운영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게 될 공산이 짙기 때문이다. 식량수급과 재정정책의 이 같은 인과관계는 외미도입에 따른 양특회계 재원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우리 재정의 세출입구조의 취약성에 본격적인 문제가 내재해 있는 것이며, 또 그 때문에 고미가 정책을 중추로 한 농촌소득정책이 억압돼 왔음을 재삼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외미도입에 의해 완성된 재원은 농촌투자에 충당해야 하며, 불투명한 농업통계와 이로 말미암아 초래됐던 식량수급 전망의 불투명성 때문에 상면한 농업부문의 발전 과제를 그르치는 일이 생긴다면 식분자급의 목표성취는 커녕 외곡의존의 식량수급 체제를 반전시키겠다는 희망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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