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은 막말, 선 못 긋는 민주당 … 줄타기하다 역풍 일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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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신부가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옹호한 것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은 양비론이었다.

 25일 김한길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용납할 수 없는 도발”이라며 연평도 도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말했지만 박 신부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동의할 수 없는 인식”이라고 박 신부 발언에 완곡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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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부 말고 당내에선 누구 하나 나서서 박 신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민주당은 여권을 겨냥해 “(박 신부의 말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해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라거나 “사제단의 말씀에 겸허히 귀 기울이라”는 공식 논평을 냈다.

 신경민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신부와 목사”라며 “유신 때도 정치권은 민주화운동 종교계를 빨갱이·좌익이라 했다. 문제의 근원은 민·관·군의 총체적 선거 개입”이라고 말했다. “사제 발언의 대의는 분명하다”고도 했다.

 이에 민주당이 또 진영논리에 갇혀 국민 눈높이에 맞는 목소리를 분명히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내에선 “박 신부의 문제 발언만 차별적으로 비판하면서 대응하면 되는데 당은 그러지 않고 있다. 나중에 또다시 지금의 역풍을 복기하면서 후회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는 말도 들렸다.

 실제로 민주당은 중요한 고비마다 국민의 상식에 어긋나는 판단을 하면서 실점을 자처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자기 진영에서 나온 막말에 직격탄을 맞아도 자기 세력이라고 옹호하며 별다른 대응을 취하지 못하다가 한참 뒤에야 “문제가 있었다”고 반성하는 게 민주당의 패턴이었다.

 지난해 총선 때는 ‘나는 꼼수다’의 힘을 의식해 ‘김용민 막말 논란’에 대응하지 않았고, 대선 국면에선 이종걸 의원의 ‘박근혜 그년’과 김광진 의원의 ‘백선엽 민족 반역자’에 대해 확실히 선을 긋고 가지 못했다.

 지난해 총선·대선에서 연패한 뒤 나온 선거평가보고서에서 패인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진영논리’였다. 문재인 의원 스스로도 “우리 진영의 논리에 갇혀 중간층의 지지를 더 받아내고 확장해 나가는 데 부족함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했고, 현재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전병헌 의원도 대선 직후 “대선 후보 TV토론 때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에게 ‘인신 공격은 자제하자’고 문 의원이 한마디 했어야 했다. 상대를 독선이라고 비판하면서 우리에겐 독선이 없었는지 솔직히 반성해야 한다”고 자성했다.

 그럼에도 이번 국면에서 민주당이 과거와의 선 긋기에 또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 당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큰 패배 이후 “진영논리를 벗어나 확실하게 지적할 건 지적하자”고 반성했지만 그때뿐이고 매번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조경태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균형감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대변인 논평은 아쉬움이 남는다”며 “민주당은 더 이상 실수해선 안 된다”고 당의 대응을 비판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민주당은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대해야 승리할 수 있는데, 막말 논란 등에 늘 늦게 대응하면서 중도적 성향을 띠거나 정치혐오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걸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권을 다 끌어모아야 이긴다는 강박에 갇혀 정작 확장해야 할 유권자가 고정 지지자 밖에 더욱 많다는 걸 민주당은 아예 잊어버린 것 같다”고도 했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민주사회에서 다양한 의견과 갈등을 피할 수는 없지만 대화를 통해 이견을 조정하고 합리적 결론을 내고 그것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사제단의 대선불복성 주장을 비판하면서 이들과 ‘범야권 연석회의’란 틀 안에서 손을 잡고 있는 민주당도 동시에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아직 우리 사회는 불신과 대결의 문화가 지속되고 있고,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과 국력의 낭비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국민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권에서부터 법질서 준수와 타협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인식·이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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