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사업과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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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개 갈이 벌어서 정승 갈이 써라』하는 속담이 우리네 서민층에 있다.
개를 정승과 대위 시켜 놓은 우리 조상들의 짓궂은 익살에 대하여는 그저 지나가기로 하고, 풀이를 생각해 보면, 『개같이』라는 말 대신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를 놓고『정승 같이』라는 말을『나라를 위하고 백성의 생활을 보살피는 일에』로 대치해 보면은, 더러운 짓 깨끗한 짓 가리지 않고 때로는 욕도 먹고 매도 맞아 가면서까지라도 돈을 벌어서 쓸 때에는 명분 좋고 보람있는 일에 쓰라는 가르침이 나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구수한 속담의 산 보기를 우리 주변에 있는 자질구레하게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개인들의 생활사 속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시야를 넓혀서 볼 때, 세계사의 망망한 흐름 속의 민족들의 역사에서도, 숱한 그 보기를 과히 힘들이지 않고 찾아 볼 수가 있다.
즉 해상강도질을 한다든가, 아니면 아편 또는 노예장사를 하여 벌어들인 돈으로, 국민 생활을 향상시키고, 국력을 부강하게 하여 세계문화 발전의 앞장을 질러, 오늘날의 국제 정치무대에서 크게 입신출세할 기틀을 일찌감치 마련한 나라들의 실예들 말이다.
관광사업을 일구어서, 돈 많아 흥청대는 외국 손님들을 모셔들여 나라 자랑도 하고 놀게도 하여주면, 그 금싸라기 같은 외화를 손쉽게 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속셈의 한가지 방안으로「누드」촌·기생촌·「카지노」촌을 서울근방에 만들어 보겠다는 아니, 볼까 구상했다는 사실은, (뒤늦게 사실무근이라고 해명을 하기는 했지만) 그러고 보면 그다지 심한 나무람의 대상은 못될성싶다.
차마 타인의 생명재산을 손상시키거나 타민족을 멸망의 구렁으로 몰아 넣을 우려를 범하여 가면서 까지는 할 수 없는 일이니, 도리 없이 내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동방예의지국의 민족적 긍지나 자랑만을, 잠시 눈물을 머금고 희생시킴으로써 돈벌이 책을 피나게 강구해 보았을 그 누군가의 고육지책임이 역력하기 때문이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이번 이 일을 통해서 노출된 특징 있는 사고의 일 국면이 여성의 한 사람인 나의 감정을 어느 정도 건드린 데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 것이다. 즉 해적질이고 아편상이고 노예상이고 간에 그 일에 중심과 주변의 담당자들은 모르기는 하겠지만 주로 남성들인 것이다. 해적선의 여두목의 이름도 노예선의 여선원의 이름도 과문인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는 「카지노」촌은 제외로 하고, 「누드」촌이니 기생촌의 역할의 주인공들은 아무리 보아도 여성들임에 틀림없다는 말이다.
주인공들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다면 일의 담당자들이라고 바꾸어도 좋다. 하여간 돈을 잘 벌고 못 벌고 하는 문제의 핵심을 쥘 사람들이 여성들이 되겠다는 뜻이다. 여성이 경제활동의 직접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맡게되는 일에 대해서 남녀평등사상의, 나아가서는 여성상위시대를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사실의 단적인 표현일 수도 있는 이일을 바라보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의 보다 더 여성의 한사람으로서의 나의 감정이 적이 평판치 못하다는 말이다.
나라의 전통이나 민족의 긍지를 훼손시키는 여건 속에서 밖에는, 아직은 여성은 경제활동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놓여있는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란 말인가. 국민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남녀평등 교육이 실시된 지 어언 30년이 되어 오는 오늘의 이 시점에서, 그도 잘 되어서 뜻대로 돈이 잘 벌어질지 아닐지는 전연 미지수에 속하는 그런 사업에 있어서 말이다.
절대로 큰소리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관광사업이든 무엇이든 보다 더 우리의 독자성을 살린, 건전한, 그리고 외국 분들을 잘 대접할 수도 있는 분야의 일이 골똘히 생각하면 있을 법도하다는 평범한 제언을 한마디 할 따름인 것이다.
안효식<경희대학강사·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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