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피에타」상의 수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마치 자신의 몸뚱이라드 다친듯이, 또는 천구가 큰 부상이라도 입은듯이 안타까와 했다.』
21일자 「로마」발 외신은 전세계에 이렇게 타전 되었다. 「바티칸」의 성 「베드루」 성상에 있는『라·피에타』상이 파손된 것에 대한 세계시민의 표정이다. 「미켄란젤로」가 백색의 대리석에 조각한 이 작품은「르네상스」시대의 「예술적인 영광」을 나타내는 걸작중의 걸작이다. 성모「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무릎 위에 안고 애병해하는 모습이다.
「이탈리아」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정신이상을 일으킨 한 「헝가리」청년이 쇠망치를 휘둘렀다고 한다. 「마리아」의 왼쪽 팔꿈치 아랫부분·왼쪽 눈, 그리고 머리의「베일」· 코가 차례로 부서졌다. 복원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
교황 「바오로」6세는 정오삼종기도중에 이 소식을 듣고 허둥지둥 이 상으로 달러갔다고 외신은 전한다.
「미켈란젤로」는 당시 이 조각을 주문 받으면서 『소생한 예술가중에서 누구도 더 울륭하게 만들 수 없는 최고의 대리석 조각』으로 만들것을 약속했었다. 불과 23세의 나이였다.
「괴렌체」태생인 그는 처음으로「로마」를 방문한 시기인 1496년부터 1501년 사이에 이 대업을 완성했다. 그무렵 그의 형 「리오나르도」는 사제의 신분으로 예언자를 믿었다는 죄 때문에 화형을 받았었다. 1498년 바로5윌23일의 일이다. 「로마」에 머물러 있던 「미겔란젤로」는 처형을 받은 그의 형을 보러 고향으로 내려가지 앉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그 슬픔과 고통을 참고 있었다. 「피에타」상은 「미켈란젤로」의 그런 영혼의 고뇌가 마치 핏줄에 이어지둣이 백색의 대리석에 옮겨진 것인지도 모른다. 죽은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마리아」의 심중을 누구보다도 그는 절박하게 느꼈을 것도 같다.
「프랑스」작가 「로망· 를랑」의 전기를 보면 「미켈란젤로」는 그런 수 없이 불행한조각가였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가 그렇듯이 가난과 냉소가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그러나 이 조각가는 『마치 영웅처럼』 자신이 창조하는 예술적 가치에 전생애를 바쳤다. 그는 속세적인 고민따위는 오르지 의지와 인간정신으로 극복한 것이다. 그는 이미 40대에 깊은 노쇠에 빠질 정도로 예술에 몰두했다.
지난64년 「뉴요크」 세계박람회 때, 그의 「괴에타」상은 「뉴요크」로 운반되어 보험금 1천만 「달러」 (49억윈 상당) 가 걸렸었다.
그것은 한 세속적 평가에 지나지 않는 「에피소드」지만, 인류의 정신문화적가치는 어떻게 헤아릴지…. 서운한 생각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