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정상회담 두 주역의 외교 스타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상회담은 그 정의상 주역의 역할이 다른 어느 형태의 외교활동에서보다 중요성을 띠게되는 것이다. 「닉슨」·「브레즈네프」간의 역사적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주역의 외교 「스타일」을 살펴본다. <전육기자>

<닉슨>현실대처에 기민…변신무상|키신저가 뒷받침, 실리추구
『신념과 「비전」이 없는 「닉슨」, 즉 정치철학이 없고 기회주의자이며 표리부동한 「닉슨」은 필요에 따라서는 항상 감쪽같은 정치적·외교적 변신을 구사해온 흥정의 귀재이다』 「디어도·화이트」저 『대통령의 탄생』에서). 「닉슨」의 성격에 대한 이와 같은 판단은 극단적인 견해가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미국 안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다. 확전과 축전을 동시에 실시하면서도 국내여론 앞에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월남전은 다음 선거의 「이슈」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하고 흑백문제에 대해 흑인 앞에서는 흑인이 듣기 좋은 소리를, 백인 앞에서는 백인이 듣기 좋은 소리를 하며 은근히 흑백통합을 지연시키는 정책을 밀고 가기도 한다.
이런 「닉슨」의 개인적 바탕 위에 19세기 「유럽」외교계에서 현실외교를 무자비하게 추진한 「메테르니히」식 「스타일」의 「키신저」가 실리중심의 정치이론과 외교발상을 가미해줌으로써 미국외교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실리」를 내건 현실주의적 성격을 띠게되었다.
세계평화는 즉흥적인 위기의 해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요국가들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기본적 국제질서의 확립』에서 온다고 주장하는 「키신저」의 이론은 그리하여 미-중공·미-소 정상회담이라는 어려운 외교활동을 가능케 했다.
이렇게 볼 때 「닉슨」대통령의 『서로의 사회제도나 세력권을 존중해 주면서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서 협력을 하자』는 주장은 퍽 자연스럽게 들린다. 4반세기에 걸쳐 굳어진 냉전심리를 짧은 시일 안에 공존의 심리로 바꾸는데는 그러한 「스타일」이야말로 지극히 효율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스크바」정상회담의 실질적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런 「닉슨」의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브레즈네프>중도노선견지…타협의 명수|우회적 방법으로 실속 차려
독주와 편중을 피하고 항상 토론을 통한 당내 중논을 대변하는 형식으로 중도노선을 견지해온 「브레즈네프」는 외교면에서도 되도록 극적인 귀결보단 우회적인 방법으로 상대방에 양보를 얻어내어 속셈을 차리는 무난한 타협수법을 기조로 삼아왔다.
대중공 견제에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 먼저 대독관계를 개선함으로써 구주안보회의의 기틀을 닦은 것이나 소련의 실질이익을 앞세워 미국의 월맹 항구봉쇄조처에도 불구, 온건한 반응을 보여 「닉슨」을 「모스크바」로 오게 한 후 양국의 현안문제에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보다 많이 얻어내려 하는 것은 「브레즈네프」 실리외교의 재확인이다.
혁명을 성수한 「레닌」의 「비전」이나 세계대전의 고비에서 소련세력의 부상을 확보한 「스탈린」의 냉혹한 추진력도, 강대국으로서 소련의 위치를 굳히기 위해 지닌 힘 이상의 객기를 부리던 「흐루시초프」의 위세도 「브레즈네프」에게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서도 평범하고 끈질긴 그의 외교수단은 소련을 초강대국으로 굳히는데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브레즈네프」는 미국이 월남전에 묶여 있는 동안 중동·인도아 대륙진출, 대서구 「데탕트」모색 등으로 일찌기 전임자들이 이루지 못한 소련외교의 영역을 넓혔다.
이 같은 성과는 극적인 변전에서 오는 외교적 효과보다는 자제를 봉한 착실한 실속을 차리는 「브레즈네프」의 외교 「스타일」에 크게 힘입었다.
「흐루시초프」의 「코트」자락에 묻혀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끝내는 「흐」를 내놓고 정상에 오른 「브레즈네프」의 출세과정이 말해주듯 그는 외교정책의 수립에 있어서도 자기의견을 강력하게 내밀거나 급진적인 이득을 추구하지 않는다. 반대파를 누를 때는 반드시 자기에 앞서 다수의견을 앞세우며 국제분쟁에서도 극단적인 대립보다는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는 수법을 택해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