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의 「모스크바」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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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닉슨」 미국대통령은 20일 「워싱턴」을 출발, 미국의 전후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인 공식 소련 방문길에 오른다.
그의 이번 「모스크바」방문은 전후 4반세기에 걸쳐 존재했던 양국간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고, 「유럽」·중동·월남·동북「아시아」의 냉전구조와 열전상태를 새로운 열강관계와 다극체제로 재조정하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당사국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세계 모든 나라들의 운명에도 커다란 여파를 미치게 할 것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이 쏠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67년 「글라스버러」 회담 이래 처음 실현된 「닉슨」·「브레즈네프」의 재회동은 큰 눈으로 볼 때에는 지난 3월에 발표된 「닉슨」·주은래의 상해공동성명이 불러온 국제정치의 3극 구조화를 배경으로 해서 「닉슨·독트린」과 「브레즈네프」의 실리외교가 타협할 수 있는 명확한 접점을 긋는데 주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 사이에서 상호흥정의 대상이 될 안건들은 양국간의 관계개선과 「유럽」이 안보문제, 월남 및 중동문제는 물론, 또 어쩌면 한반도정세를 비롯한 동북아문제 등 광범위한 분쟁해소의 과제들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양국간 문제에 있어서는 전략무기제한협정·통상해운협정·과학문화교류협정의 조인으로 지금까지 미·소간에 존재했던 정치·경제·문화면의 냉전적 잔재들을 제거, 상호간의 평화공존과 선린외교 및 최혜국대우의 기틀을 조약화 할 것으로 전망돼 이것이 세계평화의 커다란 전기가 될 것임은 일단 긍점해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 모든 교섭과점에서 우리는 미국의 개입축소경향에 반비례해서 소련의 개입확대경향이 암암리에 드러날 것임을 심각하게 주시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다음으로 양국수뇌들은 특히 제3국문제에 있어 전략무기제한협정과 독-소 불가침조약을 토대로 한 「나트」와 「바르샤바」 동맹기구의 균형감군 및 「유럽」 안보회의개최 문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앞으로 이러한 계획이 실천될 경우 미군의 「유럽」철수가 실현되는 반면, 소련은 동구는 물론 서구에 대해서도 부분적 발언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한편 소련은 중동과 지중해·인도양 및 남아 일각에서도 계속 영향력을 보유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월남으로부터의 명예로운 철수를 계속 모색할 것이 틀림없다.
월남문제를 두고 볼 때도 이번 회담에서 소련의 압력에 의한 「하노이」의 남침중지를 보장받기는 쉽지 않을 듯하며, 경제면에서도 양국간의 통상확대를 통해 보다 큰 이득을 차지할 수 있는 쪽은 기술과 자본을 도입하려는 통제체제하의 소련뿐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닉슨」미국대통령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재선을 위한 선전효과와 「유럽」 및 「아시아」로부터의 『명예로운 철수』를 보장받는 정도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금할 수 없게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계심은 미·소간의 토의대상에 오를 수도 있는 동북「아시아」문제에 상도할 때 더욱 깊어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는 오늘날 미·중공 접근, 일·소 접근, 미·소·중공 3각관계 등 3강 내지 4강 관계의 중첩된 교우 속에 미묘한 변화기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상해공동성명에서 어렴풋이 탐색된 언외의 지향성이 이번 「모스크바」회담에서도 암암리에 반추되리란 가능성이 짚어지는 이 마당에 우리는 다시 한번 열강의 권력정치와 비밀흥정으로 우리의 운명이 타율적으로 강제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명백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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