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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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즐겁게 노는 어린이들을 본다. 조그만 동작, 발랄한 상상 등 어느것 하나 즐거워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어른들은 놀이를 단순한 몸짓, 아니면 정신의 오락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놀이란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어린이들에게는 어른의 직무와 같은 것이다. 중요하기는 모두 마찬가지이다.
어린이들은 놀면서 꿈을 실현하고, 마음속의 은밀한 것들을 드러낸다. 때로는 어떤 해결책 까지도 발견한다. 젖먹이의 놀이는 순수한 감각 활동이다. 보고 느끼고 움직이고 소리를 낸다.
청각, 촉각 등을 만족시켜주면 줄수록 그들은 즐거워한다.
세살쯤 된 어린이는 소유의 본능에 눈뜨기 시작한다. 그래서 집짓기를 좋아한다. 책상 아래나 방구석에 자기들의 영성을 만들고 싶어한다.
좀더 자라면 이들의 상상력은 더욱 넓고 깊어진다. 장난감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시늉을 한다. 나무 조각들을 가지고 상상의 세계를 설계한다.
이때쯤 모든 어린이들은 열등 의식을 느낀다. 어른들에 비하면 자기가 얼마나 연약하고 무력한지를 조금씩 알게 된다.
이 무렵이면 그들은 공상 속에서나마 탐험가도 되고, 대장도 되고, 비행사·선장·선생님의 역할도 한다. 어깨엔 계급장을 붙일 때도 있다. 그 인물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상상만으로라도 말을 타고 달리고, 대군을 지휘한다. 아동 심리학자들은 어린이들이 동물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심리의 일맥이라고 본다.
동물을 마음대로 부리면서 우월감을 느낀다.
어린이들에게 놀이는 어른들의 신중이나 전횡에서 오는 모든 구속을 풀어줄 수 있다.
그것은 공격 기질을 발산하는 아름다운 방법이기도 하다. 벽에다 돌을 던지고, 풍선을『빵!』 터뜨리고, 나뭇가지를 꺾고, 망치로 두드리고, 장난감을 던지고 부수며, 싸움놀이를 하며…
이런 것들은 그들의 감정적 호흡이나 다름없다.
어린이들은 이런 놀이 속에서 대담한 포부를 간직한다. 또한 정신적 용기를 갖는다. 어린이들의 생활에 놀이가 얼마나 중요하며 심각한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어른들은 당연히 그들에게 그런 놀이의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넓고 안전한 운동장, 상상과 정신의 즐거움을 주는 장난감 등은 어른들이 마련 해 주어야 할 것들이다.
실내 사격장에서 장난감 총을 쏘며 사행심이나 길러주는 놀이의 환경을 방치 둔 것도 결국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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