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 깊어지면 동아시아 질서 위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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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사람 = 노재현 문화부장

-주간께서는 월드컵 공동개최를 처음 제안한 아사히 사설(1995년 6월 22일자)에서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맑은 뒤 가끔 흐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요즘은 어떤 날씨일까요.

"굳이 비유하자면 장마예요.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일본식 쓰유(장마)가 아니라 쫙쫙 퍼붓는 한국의 장마입니다. 그러나 곧 개겠지요. 다시 맑아질 것이고, 또 그래야 합니다."

-독도.역사교과서 사태가 쉽사리 진정될 것 같지 않은데요.

"한국 내의 열기를 대하면서 상당한 갭(차이)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본인 중에는 다케시마 또는 독도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 많아요. 물론 내셔널리스트 중에는 시마네현의 조례 제정 같은 움직임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요."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국내용'이라고 한 고이즈미 총리에 대해 "사실관계도 틀렸고, 국가 원수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정치가는 외국 정상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 배려를 할 때가 있습니다. 표현이 경솔하거나 적절치 않았을 수는 있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내에서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분위기를 잠재우고 진정시키려는 의도로 '한국 내에도 여러 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으리라 짐작해요. 정면 대응은 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겠지요. 총리야말로 일본 국내용으로 말했을 겁니다."

-3.1절 기념사에 대한 아사히 사설은 꽤 비판적이더군요.

"저도 기본적으로는 노 대통령의 역사인식을 이해하면서도 좀 당황했어요. '사죄'나 '배상' 같은 표현을 한국의 일반 시민이 말했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일본인 중에는 노 대통령의 기념사 일부 대목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98년 10월)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곧 나옵니다. 한국에선 교과서 채택률이 높아질까봐 걱정입니다.

"지난번엔 채택률이 0.1%도 안될 만큼 미미했지요. 이번에는 채택하는 학교가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증가한다 해도 걱정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독도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한국 측의 강경한 자세에 곤혹스러워하는 이가 많습니다. 역시 갭, 온도 차가 있네요. 어느 쪽 말이 옳을까요. 한국 학자가 쓴 것을 보면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 다시 일본 학자의 글을 보면 '이 말이 맞구나'하게 됩니다. 별로 도움도 안 되는 작은 섬인데 차라리 처음부터 섬이 없었다면…. 옛날 (한.일 협정 교섭 때) 누군가 '독도를 폭파해 버리자'고 말했다는데, 그 심정만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자 한국의 한 지자체는 '대마도의 날'로 대응했는데요.

"이런 상상을 해봅시다. 일본은 '한국의 날'을, 한국은 '일본의 날'을 정하는 겁니다. 한국이 일본 것이고 일본은 한국 것이라는 뜻이 아니고, 서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우호를 다지는 날로 삼자는 취지예요. 다케시마.독도를 '우정도(友情島)'로 명명해 공동 관리할 수도 있어요. 아니면 현재 한국이 실효 지배를 하고 있으니까 일본도 그 점을 인정하고, 한국은 일본의 얼굴(체면)을 세워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과거사에도 인식 차이가 큽니다. 한국인은 '진정한 반성이 없다'고, 많은 일본인은 '언제까지 사과를 되풀이하라는 것인가'라고 불만입니다.

"그런 면이 있지요. 제 기억이 맞다면, 93년 미야자와 총리 정권부터 10년간 등장한 8명의 총리가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한국에 사과했습니다. 천황이 처음 만나 사과한 한국 지도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입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천황이 사과한 것은 대단히 큰 일이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나카소네 총리도 사과했지요. 그런데 한국 측에서 용어에 대한 불만이 제기됐고,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 때도 사죄 요구가 거듭됐습니다. 다들 '내 시대에 일본에 대해 확실히 해두자'는 생각이었겠지요. 김대중.오부치 정상회담 때의 사과에 대해선 '사과의 결정판'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적지않은 일본인에게는 사죄 요구가 스트레스로 받아들여지고, 자존심도 상했을 겁니다. 사죄하고 나서 매번 '괘씸하다'는 말만 듣는다는 기분이겠지요.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한국을 대표하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후에 한국에서 '그는 정통성이 전혀 없었다'고 평가받고 구속까지 되니까, 일본에서는 공식적으론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지만 '그럼 우린 누구에게 사과했나''그 사과는 무엇이었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는 외교의 연속성 문제 아닐까요."

-일본의 젊은 세대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버블(거품)경제 붕괴 후 지난 10년간 어려운 시절을 거치는 동안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언제까지 당하고 비난만 받아야 하느냐'는 의식이 강해진 것 같아요. 한국은 '일본은 가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일본 내에는 '종전 이전에는 가해자였지만 최근에는 피해자 측면이 있다'는 의식이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일본의 진정한 국익을 생각한다면 주변국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정치인은 주변국의 심정을 이해한 바탕 위에서 정치를 해야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한.일 협정을 재검토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일.한 조약에는 문제도 있습니다. 다케시마.독도 문제도 '선반 위에 올려놓은' 유보 상태지요. 그러나 한번 체결된 것을 다시 얘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타결될 전망이 있다면야 문제가 다르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닙니다."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은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인의 손으로 식민지시대에 벌어진 일들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다양한 사정을 일률적으로 재단할 경우 우려가 제기될 수 있겠지요.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 입장에서는 괴롭고 죄송한 일입니다. 한편으로 아버지가 일제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아들마저 비판받거나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관계에 독도와 과거사만 있는 게 아닙니다. 며칠 전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질 때 삼척의 욘사마(배용준) 영화촬영 현장엔 일본 기자.팬들이 몰려들었지요.

"한국 연예인들이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시각도 덩달아 더 좋아졌지요. 지금의 '장마'는 일본인이 잊고 있던 '한국으로부터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떠올리게 했습니다. 최근 양국 사이에는 주로 좋은 일만 있었는데, 돌연 일장기를 불태우고 고이즈미 총리를 강하게 비판하니까 일본인으로서 착잡한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진정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는 좋은 계기로 작용할 겁니다. 일.한 관계는 오늘과 내일뿐 아니라 과거의 일도 정확히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우치게 됐으니까요. 한국민의 생각을 여러 각도에서 헤아리는 기회가 됐습니다. 또 82년의 역사교과서 파동 때와 비교하면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여유'마저 느껴집니다. 23년 전엔 지금보다 훨씬 각박했어요. 지금은 한류 붐이 있고, 양국 경제관계도 그때는 거의 일방적이었지만 지금은 상호의존적 성격이 강하지 않습니까."

-장기적으로는 낙관한다는 말씀이네요.

"낙관이라기보다는 희망을 품고 싶습니다. 지금 일.북 관계가 매우 안 좋은데, 일.한 관계마저 나빠진다면 자칫 민족 대 민족의 대립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은 막아야 합니다. 일본.중국 관계도 요즘 야스쿠니 신사참배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섬 갈등 등으로 인해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질서가 위태로워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 핵만 해도 한국.일본.미국.중국 등이 함께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미.일 트라이앵글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갈등이 더 이상 심각해져서도, 부추겨져서도 안됩니다."

'일본이 만약 재팬주(州)였다면' 사설 요약
1995년 11월 9일 아사히신문

종전 후 일본에 진주했던 미 점령군이 만약 조약을 강요해 일본을 합병, 재팬주로 만들었다고 치자. 미국은 아낌없이 자금과 인재를 투입해 재팬 주민의 교육과 산업 육성 등을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교과서가 영어라면 배우게 되는 역사도 미합중국사다. 성조기에 충성을 맹세하고 미군 병사로서 종군도 하게 됐을 것이다. 국가원수가 대통령일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자, 여러분은 이럴 때 "미국은 좋은 일도 했다"며 세계 제일의 대국에 합병된 것에 감사할 것인가. 더구나 다나카도 스즈키도 스미스나 존슨으로 개명되고, 독립운동을 사정없이 탄압했다면 어땠을까.

다른 뜻이 아니다. 총무청 장관인 에토 다카미가 기자간담회 등에서 내뱉은 발언을 곱씹어 보고 싶은 것이다. 에토는 일본이 한국을 통치할 때 각 지방에 학교를 만들어 교육했으며 도로.항만을 만들고 간척 사업을 했다는 점을 들어 "일본은 좋은 일도 했다"는 생각을 밝혔다. "일한합방은 합의 아래 성립된 것"이라고 말했던 후지오 마사유키 문부상, "합병은 원만하게 맺어졌다"는 와타나베 미치오 등 우파 정치가에겐 지금도 식민지 시대를 정당화하는 의식이 짙다.

군사력을 배경으로 합병을 강요하고 강권적 지배를 단행하면서 하나하나의 시책을 들어 "좋은 일도 했다"고 강조하는 논리가 과연 통용될 수 있을까. 재팬주를 상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한국 합병에 이르는 전 단계에 왕비 시해라는 치떨리는 음모를 실행했다. 일본은 이렇게 한민족의 자존심을 계속 짓밟아 왔던 것이다. 자국의 민족감정에 극히 민감한 일본의 우파 정치가들은 왜 이토록 이웃 나라의 민족감정에는 둔감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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