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원한다면 거절하는 법부터 배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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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박영호 신부는 “행복에 필요한 요소는 실로 다양하기 때문에 과학적, 체계적으로 익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경쟁과 승부의 세상이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정신상담·명상수련·심리치유 등 맞춤한 행복 비결을 제공하는, 이른바 마음산업이 뜨고 있다. 종교의 목적도 결국 행복에 있지 않을까.

 가톨릭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박영호(58) 신부의 접근법은 독특하다. 하느님 열심히 믿으면 행복해진다는 우격다짐이 아니다. “행복도 기술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 기술을 배우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거다. 짧게는 두 달 16시간, 길게는 열 달 120시간 과정의 행복배움터와 행복학교를 2010년부터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운영 중이다. ECHO 행복연구소다. ‘Evangelical Coaching & Healing Oriented’를 줄인 ECHO는 ‘행복을 향한 복음적 동반과 치유’라는 뜻이다.

 13일 서울 한남동 수도회 본원에서 박 신부를 만났다. 그는 평신도인 김연진(39)씨와 함께 나타났다. 김씨가 소장, 자신은 수석연구원이라고 했다. “성직자와 평신도가 대등하게 협력할 수 있다는 걸 한국 교회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행복교육을 시작한 계기는.

 “1990년대 중반 일이다. 수도회에 들어온 학생들 교육을 맡고 있었는데 뭔가 화난 표정이 많았다. 세속을 등지고 신부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화를 함부로 내면 신부가 못 된다고 하니까 꾹꾹 참고 있었던 거다. 묵은 화는 결국 상처가 된다. 해결 방법을 찾다가 놀랍게도 미국의 한 초등학교 교재에서 분노조절과 관련된 내용을 발견했다.”

 박 신부는 “당시는 인간 심리의 밝은 면에 주목하는 긍정심리학에 기초한 행복학이 막 생겨나던 시기”라고 돌아봤다. 그는 행복학 임상 결과를 들여와 한국 실정에 맞게 분노조절·상처치유 프로그램을 짰다. “행복학교가 듣기 좋은 소리만 모아 놓은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거다.

 -구체적으로 뭘 가르치나.

 “행복으로 가는 네 바퀴라는 걸 가르친다. 네 바퀴는 주체성·긍정성·관계성·목적성 등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네 바퀴 중 주체성을 가장 먼저 배운다. 주체성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의식이다. 한국 사람들은 집단의존적이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누가 요청하면 마지 못해 들어준다. 이렇게 하면 좋은 일 하고도 기쁘지 않다. 행복하지 않은 거다. 나는 그래서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주변의 청탁이나 도움 요청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주체적이 된 다음에 남을 도와야 진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주체성을 어떻게 기르나.

 “언어습관부터 바꾸도록 훈련시킨다. 언어는 사람이 자신에게 세상을 설명하는 도구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가령 ‘오늘 빨리 가봐야겠는데요’라는 수동식 표현보다 많이 어색하더라도 ‘나는 오늘 가기로 선택을 했어’라고 말하도록 한다. 이런 식으로 실제와 비슷한 상황을 연출해 훈련시킨다.”

 박 신부는 로마 보나벤투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독교와 불교의 종교체험 비교를 공부했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언어 문제에 민감했다. “기독교의 복음은 과거에는 말 그대로 기쁘고 행복한 소식이었지만 요즘은 사람들에게 크게 가 닿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기독교의 ‘구원’을 얘기하면 ‘십원’보다 좀 적구나, 하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거다.

 박 신부는 “종교의 언어도 당대 감각에 맞게 끊임없이 갱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말하자면 그런 변화의 산실이다.

 행복교육에 종교적 영성은 필수적이다. 행복 문제를 깊숙이 파고들면 결국 존재의 유한성에 비롯된 본질적인 질문, 즉 ‘나는 누구인가’ ‘인생은 왜 내게 주어졌는가’ 같은 물음과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은 네 바퀴의 마지막, 목적성에서 얻게 된다.

 물론 구체적 인생 목적을 정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중요한 건 네 바퀴를 익히는 과정을 통해 행복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는 거다. 멀게만 느껴졌던 행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031-774-9425.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영성 2.0 (22) 프란치스코 수도회 박영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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