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테너 사랑 독차지한 네모리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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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한 장면.

‘남 몰래 흐르는 눈물’. 도니제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한번도 관람한 적이 없는 사람들도 이 아리아만큼은 아는 이들이 많다.

주인공인 네모리노를 위한 이 아리아는 작곡 당시에는 계획에 없던 곡이었으나 도니제티가 대본가인 펠리체 로마니와 치열한 논쟁을 벌인 끝에 마지 못해 끝부분에 집어 넣은 곡이었다.

이 한 곡의 아리아로 네모리노 역은 수많은 테너들의 명성을 드높였다. 20세기 최고의 테너라 불리는 엔리코 카루소의 데뷔도 네모리노 역을 통해서였고 2007년 9월에 타계한 ‘루치아노 파바로티’ 또한 지난 수십 년간 부동의 네모리노였다.

그러나 극중 상대역인 소프라노 ‘아디나’는 아무리 잘 연기해도 네모리노에게만 쏟아지는 갈채에 묻혀버리기 일쑤여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테너의 산실이지만 소프라노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무대인 셈이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 카르멘에게 마음을 빼앗긴 ‘돈 호세’는 직업 군인이었고 도니제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여주인공 ‘아디나’를 집요하게 붙잡으려는 ‘벨코레’ 또한 직업 군인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카르멘은 직업 군인인 돈 호세를 저버리고 민간인인 투우사를 좇았다는 것이고 아디나는 민간인인 주인공 ‘네모리노’에게 좀처럼 마음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 호세를 유혹하기 위해 카르멘이 장미꽃 한 송이를 땅바닥에 던지는 반면에 벨코레는 아디나에게 정중하게 꽃을 바친다는 점도 다르다.

 네모리노의 애절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아디나는 벨코레와의 결혼을 승락하고 마을이 온통 결혼식 축제 준비로 들떠있는 가운데 네모리노는 엉터리 약장수 ‘둘카마라’로부터 사랑의 묘약을 사기 위해 군 입대를 결정하는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아디나는 자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 군 입대까지 결심했다는 네모리노의 행동에 감동받아 마침내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연다.

아디나의 사랑을 확인하고 네모리노가 부르는 노래.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이 넘쳐 흐르네. 저 즐거운 소녀들을 부러워 하고 있네. 나는 무얼 찾고 있나? 그녀는 나를 사랑하나? 나는 알 수 있네. 그녀의 뜨거운 심장이 고동치는 순간 나의 한숨이 잠시 그녀의 한숨과 만날 때 이대로 죽어도 좋으련만. 영원한 환희의 순간이네.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네. 사랑으로 벅찬 내 가슴.”

이 노래를 들은 아디나가 완전한 사랑을 맹세하자 네모리노는 사랑의 묘약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믿는데 이 순간을 지켜 본 육군 하사관 벨코레는 깨끗하게 아디나를 포기하고 전쟁터로 출동한다.

결혼식 날짜까지 잡고 예식을 치를 준비까지 끝낸 상황에서 신부가 될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결혼을 포기하는 벨코레는 그야말로 군인정신의 표본이다.

사랑의 묘약을 보면서 경제적으로 어렵기만 했던 시절에 돈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사랑도 차지하기 위해 월남전에 자원했던 이 땅의 군인들을 떠올리는 것은 부질없는 상상일까.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cafe.daum.net/the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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