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까도 까도 뒷통수 치는 양파남의 실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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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포토]

여자들이 차를 보는 기준은?

먼저 국산차냐, 외제차냐를 본다. 국산차는 작은 차-보통차-고급차-큰차로 나뉜다. 외제차는 오픈카-비싼차-붕붕카(꼬마자동차 붕붕을 닮은 차) 순으로 구분된다. 얼마전 JTBC ‘마녀사냥’에서 언급된 내용인데, 방송을 본 여성 지인들이 대체로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남자들이 세밀하게 차를 구분하는 것과 정반대란 이야기였다.

안타깝게도(여자들은 정작 이렇게 허술하게 ‘차’를 구분하지만) 남자들에겐 ‘차’가 지위를 암시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처럼 쓰인다. “걔 요즘 돈 잘 번대”라며 BMW나 벤츠쯤을 언급하면 대개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일까. ‘잘 살고 있다’를 보여주기 위해 후-불면 없어질 것 같은 거품 거짓말을 뱉어내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남자가 그렇다. BMW 람보르기니를 ‘빌려’타면서 “내꺼”라고 속이고, 의대만 나오고 MBA 준비과정만 마쳤을 뿐인데, 병원을 개업하고, 해외 MBA까지 마쳤다고 ‘극(極) 과장’해 말하는 남자. 이 허세 남자의 거품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조금 부풀렸을 뿐 사기꾼은 아냐!”

“이 사기꾼아!”

아내가 목에 힘줄이 솟도록 악을 써대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왜 사기꾼이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건가. 어디 제대로 짚어보자. 가슴에 손을 얹고 부끄러울 정도로 과연 내가 거짓말을 했던가.

그래, 좀 과장은 했다. 근데 그건 단순히 아내를 ‘속이려고’ 그런 게 아니다. 잘 보이고 싶었을 뿐. 내게 뱀 혓바닥 같은 사기꾼의 기질은 없단 말이다.

일단 오해부터 풀어보자. 나는 사실 재혼남이다. 전처와 성격이 맞지 않아 쿨하게 헤어졌다. 아내에게 재혼이란 사실은 이미 실토했다. 혼인기간이 7년이었지만, 6개월이라고 줄였을 뿐이다. 두 번째. 내 학력이 뻥인가. 그렇지 않다.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MBA 과정을 마쳤고 서양의학을 공부했다고 말한 건 맞다. MBA를 하려고 준비과정만을 듣고 서양의학이 아닌 동양의학을 전공했던 게 허풍선이 소리를 들을 일인가.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란 사실은 변함없지 않은가.

돈 문제도 그렇다. 아내를 한창 만날 때 이렇게 말한 적은 있다. “한 때 잘나갔을 때엔 30~40억원을 벌어들이기도 했다”고. 지금 그 돈을 갖고 있다고 말하진 않았다. 다만, 그런 돈을 벌어들인 적이 있다고 했을 뿐. 게다가 아버지가 대기업 계열사 사장이고 외삼촌이 은행장이라고 했던 기억은 없다. 아버지가 대기업 임원이며, 외삼촌이 은행에 근무하신다고는 했던 것도 같다.

아내가 나를 몰아세우는 건 병원 때문인 것도 같은데, 이 부분도 억울하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컨설팅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때 성형외과를 컨설팅해 준 적이 있었다. 근데 그게 와전되었는지 아내는 내가 “성형외과 병원을 경영한 적이 있다”로 알고 있었다.
정말이다. 내 이름을 걸고, 난 단 한 번도 아내에게 사기 친 적은 없다.

#내 남편은 허세남

‘람보르기니, BMW’ 알고보니 빌린차에 대부업체 대출까지

내 남편은 양파남이다. 까도 까도 또 뒷통수를 치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이 남자를 만났을 때, 내가 건네받은 정보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과 죄 다르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다소 과장할 수는 있지만, 이건 아예 사실이 아니잖은가.

나도 사실은 재혼이었다. 그래서 전남편과의 일은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전처와 6개월간 같이 살았다고 했던 게 사실은 7년이었다는 걸 우연히 알았을 때, ‘그래,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하지만 남편이 의대를 졸업한 게 아니라 생명과학부라는 걸 알았을 땐 충격이 컸다. 결혼식에서조차 “의대를 졸업하고 MBA를 수료한 뒤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한 금융전문가, 컨설팅 회사 임원”이란 소개를 했던 터였다. 남편이 직접 작성해서 사회자에게 건넨 이 이력이 거짓이라니.

가장 큰 충격은 람보르기니 사건이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집으로 고지서가 한 통 왔다. 발신인은 렌터카 업체. 봉투를 뜯어보니, 람보르기니 리스 비용이 연체됐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평소 남편은 차를 무척 좋아했다. 연애 초기 마티즈를 타고 다니는 내게 “차가 2대나 있으니, 내 차를 타라”며 자신이 몰던 BMW를 선뜻 내줬다. 본인은 다른 차를 타면 된다고 할 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퇴근한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남편은 “사업이 잘 안 된다. 미안해서 말을 못했다.”고 했다. 그 날로 남편에게 공인인증서를 넘겨받아 어디에 돈을 쓰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자기 차라는 BMW 역시 빌린 차였고, 세금은 790만원이나 밀려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의 카드명세서는 현금서비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부업체까지 이용해 카드회사와 대부업체에 진 빚이 5500만원이나 됐다. “30~40억원을 벌기도 했다, 연봉이 1억이 넘는다”고 했지만 정작 이 남자는 1억8000만원의 빚만 있는 빈털터리였다.

#법원 “과장됐을 뿐 결혼 사기는 아냐”

남편의 계속된 거짓말에 아내는 결국 결혼 4개월 만에 혼인 취소 소송을 냈다. “사기결혼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달리 판단했다. 서울가정법원은 “사기를 이유로 혼인을 취소하려면 혼인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기망(欺罔)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먼저 남편의 학력에 대해선 “학력이 과장되기는 했지만 완전히 허위는 아니며, 수입이 1억원 이상에 이르는 등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고 밝혔다. 또 “남편의 전혼(前婚) 기간의 길고 짧음이 결혼 결심에 있어 중요한 요소였다고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법원은 “비록 학력을 과장하고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것을 이야기 안한 것이 아내를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아내 측의 혼인 취소 소송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부부의 연으로 지내기에는 두 사람이 극도로 멀어졌다고 봤다. 재판부는 “남편이 아내에게 채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점이 혼인관계 파탄의 계기가 되었다고 보인다”며 “남편은 아내에게 위자료 1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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