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희소정자증’ 남편과 아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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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나서 달라진 게 있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아닐까 합니다. 아기만 잘 보이는 렌즈라도 눈에 심은 것처럼, 거리를 걸으면 그렇게 엄마 손을 잡고 지나다니는 아기들만 보이더군요. 아마도 제 인생의 우선순위에 ‘아이’라는 존재가 들어와서겠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부부는 아이 때문에 속을 적잖이 끓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아내. 그리고 ‘희소정자증’을 앓고 있는 남편. 아내는 호르몬제를 먹고, 고통스런 시술 과정을 겪어야 하는 시험관 아기에 도전하기로 합니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지쳐갑니다. 결국 이 부부는 남남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아가야, 이번에는 제발

다시 병원이다. 병원에서 주는 호르몬제를 꼬박꼬박 먹고 ‘과배란’이 됐는지를 확인하러 오는 길이다. 여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난소에 ‘난자’를 갖고 태어난다. 한 달에 한 번씩, 난자가 몸속에 난 길을 따라나오면 그때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내게는 그럴 기회가 원천봉쇄됐다. 남편 문제 때문이다. 나보다 10살이 많은 남편은 희소정자증이라 아기를 갖기가 어렵다.

그는 액세서리 공방을 같이하는 동업자였다. 9년 전 그와 손을 잡았을 땐, 그저 한번 결혼에 실패한 돌싱(돌아온 싱글)인줄로만 알았다. 액세서리 디자인을 하느라 함께 밤을 지새우다, 우린 점차 가까워졌고, 8년의 연애 끝에 결국 결혼을 하게 됐다.

남편이 나이가 있는지라, 아이를 빨리 갖고 싶었다. “날을 받아 노력하면 임신이 잘 된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날 잘 받아준다’는 병원도 수소문해 찾아갔다. 하지만 아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쓰레기통으로 직행한 임신테스터기만도 수백 개쯤 되는 것 같다.

시험관 아기에 도전하면서부터는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호르몬제를 먹고나면 잠도 오질 않고, 배란이 될 즈음엔 극심한 통증으로 날을 지새야했다. 약을 먹고 억지로 배란이 많이 되도록 하니 배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난소에서 난자를 꺼내는 시술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몸 밖에서 이뤄지는 수정. 그러고도 3~5일 뒤에 다시 병원에 찾아가 수정된 ‘아기씨’를 자궁에 다시 집어넣는 시술을 받아야 한다. 온갖 주사를 맞고 돌아오면 종일 누워있어야 하니 산송장이 따로 없다. 그래도 성공이면 다행이지만, 아기는 늘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실패했단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남편도 함께 울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일 년 넘게 연달아 실패를 거듭하면서 남편은 무심해졌다. 병원에 입원해도 찾아오질 않았다. 공방에 일이 있단 이유를 댔다. 아기 갖기에 실패하면서 무기력해졌고, 남편과의 사이도 멀어졌다.

금 100돈을 갖고 사라진 아내

나를 닮은 아이를 갖고 싶은 건 아내만이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시술의 고통에서 허우적대는 아내를 보는 내 마음은 편칠 않았다. 한 달을 주기로,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짜증이 늘기 시작했다. 처음엔 공방 일을 미루고라도 아내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손을 잡고 있는 것 외에 아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남편. 나는 무능력한 남편이었다.

공방 일에 매달린 건 그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돈을 벌어다 주는 것밖엔 없어보였다. 어느 날, 아내는 잔뜩 날 선 목소리로 “왜 병문안을 오지 않았느냐”며 화를 냈다. 맞다. 병원에 가지 않은 건 잘못이지만, 아내만큼 나도 고통스러워 한다는 걸 아내는 모른다. 그렇게 말다툼을 한 다음날. 공방에 출근해보니, 장부가 사라졌다. 금고에 넣어둔 금 100돈도 사라졌다. 느낌이 이상해 집을 가보니 아내가 없다. 아내의 옷가지며 짐도 사라진 뒤였다.

법원 “재산 분할 아내 30%, 남편 70% 해야”

집을 나간 아내는 이혼 소송을 냈다. 남편도 되받아쳤다. 부산가정법원은 “부부관계의 파탄의 책임은 아내와 남편 모두에게 대등하게 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아내가 금을 무단으로 갖고 가출을 한 것은 부부사이의 신뢰를 깨뜨리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남편에 대해선 “시험관 아기 시술로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폭언과 욕설을 하는 등 부부간의 갈등을 증폭시켰다”고 밝혔다. 두 부부가 이뤄놓은 재산은 아내 30%, 남편이 70%씩 나눠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아내가 공장운영자금을 지원하고, 가사를 전담하면서도 경리 업무를 보는 등 같이 업체를 운영한 점을 인정해 재산형성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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