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꾸러기] '영모가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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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가 사라졌다/공지희 지음, 비룡소, 8천5백원

아동문학상인 제9회 황금도깨비상 장편동화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한 작품이다.

저자 공지희(41)씨는 '마법의 빨간 립스틱' '별라와 하양투성이 공주'를 펴낸 적이 있는 기성작가. 소설가 오정희씨는 심사평에서 "발랄하고 따뜻한 상상력, 생동감 있는 묘사체의 문장과 단단한 구성력이 돋보인다"고 했고, 평론가 김화영씨도 "거침없고 속도감 있는 서술로 시종 읽는 이의 흥미를 끌며, 명쾌한 짜임새와 신선한 상상력이 근년에 보기드문 수확"이라고 후한 점수를 주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병구와 영모는 단짝이지만 자라는 환경은 영 딴판이다. 병구는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자주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공부도 썩 잘하는 편이 아니다.

반면 영모는 부모와 함께 살고 학교 성적도 좋고 똑똑한 아이다. 그러나 영모 아버지는 '그걸론 모자라, 더 잘해야 해'라며 영모를 들볶고 심지어 조금이라도 눈 밖에 나면 스스럼없이 매를 든다.

그러던 어느 날 영모는 자신이 즐겨하던 조각을 하다 아버지한테 들켜 손찌검을 당하고는 가출을 해버린다. 병구는 영모를 찾아 사방을 뒤져보지만 그 어디에도 영모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다 영모가 아끼던 검은 고양이 담이를 쫓아갔더니 눈앞에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얼핏 줄거리만 보면 가정 내 폭력이나 부자 간의 갈등을 다뤄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로 비친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터널을 빠져 나오듯 환한 햇살이 서서히 비쳐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작가가 '라온제나'라는 환상적인 공간을 창조해 냈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또는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처럼 라온제나에서는 '이쪽 현실'과는 전혀 다르게 시간이 흐른다.

어린아이가 노인으로, 노인이 젊은이로 자유자재로 변하는가 하면, '이쪽 현실'에서는 겨우 하루.이틀이 지났을 뿐인 데도 라온제나에서는 봄.여름.가을로 계절이 바뀌어져 있다.

이런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통해 어린 주인공들은 세상과 인생을 당당하게 맞닥뜨릴 수 있게 된다. 영모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의지하지 않고 나 자신을 스스로 돌볼 때 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다'며 진정한 친구 병구를 뜨겁게 껴안는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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