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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배우겠다" 국회 갔다 놀란 키르기스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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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일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나가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의사진행발언에 나선 새누리당 이우현 의원이 “강기정 의원이 (청와대 경호 지원 요원의) 어깨를 잡고 멱살을 잡고 구타를 했다”고 말하자 이에 항의하며 집단 퇴장했다. [김경빈 기자]
아탐바예프 대통령

키르기스공화국의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대통령이 19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배우고 싶다”며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그러나 그가 목도한 건 ‘파행 국회’의 민낯이었다.

 아탐바예프 대통령 일행이 국회 본회의장의 2층 방청석에 들어선 시각은 오후 2시50분. 사회를 보던 강창희 국회의장이 방문단을 소개하자 아탐바예프 대통령은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하지만 본회의장의 민주당 의석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대정부질문을 거부하면서 의원들이 퇴장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탐바예프 대통령이 인사하는 동안 남아있던 1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나갔다.

 새누리당 이우현 의원이 전날 민주당 강기정 의원과 청와대 경호 지원 요원 간에 벌어진 물리적 충돌이 강 의원 잘못이라고 발언한 게 발단이었다.

 아탐바예프 대통령이 입장하기 20여 분 전. 국회 발언대에 있던 이우현 의원과 의석에 있던 민주당 의원들 간엔 고성이 오갔다.

 ▶이우현 의원=“강 의원이 (순경의) 어깨를 잡고 멱살을 잡고 구타를 했습니다. 강 의원은 2010년에도 국회에서 김성회 의원을 폭행해 1000만원의 벌금을 받았습니다.”

 ▶임수경 의원(민주당)=“ 안 본 사람은 말하지 마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서영교 의원(민주당)=“현장에서 본 사람이 접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 의원=“듣고 있으세요! 지금은 내 시간이에요. 사건을 누가 먼저 저질렀어요?”

 이에 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그만하라”고 하자 새누리당 의석에선 “거짓말하지 마”라는 맞고함이 나왔다. 이 의원과 언쟁을 벌이던 임 의원은 가방을 들고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 모습을 본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뒤따라 나가기 시작했다. 홍익표 의원은 회의장을 나가면서 “정회하세요, 정회!”라고 외쳤다.

 2시30분. 야당 의원이 대부분 퇴장했다. 이 상태에서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와 몇몇 의원들이 다시 회의장에 들어와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 자리로 가서 격하게 항의했다. 전 원내대표와 같이 들어온 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반말 조로 “어떻게 저런 애(이 의원)를 시키냐. 국회의장이 유감표명까지 했는데 양아치 아니냐. 너무하잖아”라고 말했다.

이러는 사이에 아탐바예프 대통령이 입장했다. 어떻게 해서든 회의를 진행시키려던 강 의장은 회의장의 절반이 비어버리자 2시57분 정회를 선포했다. 더 볼 게 없어진 아탐바예프 대통령은 입장한 지 11분 만인 오후 3시1분 자리를 떴다. 본회의장을 떠나던 강 의장은 “정회하려고 해도 이것(대통령 방청) 때문에 할 수가 있어야지. 그런데 또 야당은 정회 안 한다고 소리 지르고…”라며 혼잣말을 했다.

 정회 후 강 의장을 면담한 아탐바예프 대통령은 “키르기스공화국은 대한민국이 선택한 민주주의의 길을 모범으로 삼고 나아가고 있으며, 선거 관리를 포함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경험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고 의장실이 전했다. 하지만 다분히 의전용 발언이었을 거라는 게 국회 주변의 평가다. 그에게 대한민국 국회가 보여준 건 ‘모범적 민주주의’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이날 본회의는 강기정 의원 문제로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회의는 오전 10시에 예정됐지만 민주당이 ‘강기정 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유감 표명을 주장하면서 11시가 넘어서야 시작됐다. 강 의장은 민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어떤 경우든지 국회 관내에서 현역 의원에게 물리적 제재를 가했다면 잘못된 일이다. 청와대 측은 사태의 경위를 파악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하곤 회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양당은 고함을 지르며 싸우다가 결국 부끄러운 맨얼굴만 외국 정상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오후 5시 속개된 대정부질문에서도 자극적인 언사가 오갔 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박 대통령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겠다. 15분 내내 박근혜정부 실정을 비판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 ‘적자생존’(받아 적는 사람만 자리에 있다는 뜻)이란 말을 아느냐”고 물은 뒤 “내각이 대통령 말만 수첩에 적어서는 창조경제고 뭐고 다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은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불신과 불통의 ‘쌍불 시대’로 만들었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태와 관련해 ‘ 종북 숙주론’을 제기했다.

 이철우 의원은 “ 종북 좌파가 이 국회까지 들어오고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장우 의원은 “민주당은 종북 세력의 국회 입성에 숙주 역할을 도맡았으니 ‘이석기 사태’의 공모자”라며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기생체를 떼어내고 종북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소아·김경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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