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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진실 사이 … 그 지옥 같은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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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사이비’를 내놓은 연상호 감독. 전작 ?돼지의 왕?은 1억 5000만원, 이번 작품은 3억 8000만원으로 완성했다. 상명대 서양화과를 나온 그는 2004년부터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왔다. [사진 라희찬(STUDIO 706)]

21일 개봉하는 영화 ‘사이비’는 장편 데뷔작 ‘돼지의 왕’으로 큰 주목을 받은 연상호(35)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해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최초로 프랑스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던 ‘돼지의 왕’이 학창시절의 폭력적 비극을 통해 계급·계층 갈등을 그려냈다면, 이번 작품은 종교적 차원을 넘어 믿음과 진실에 대한 총체적 질문을 던진다.

거짓 숨긴 악인 vs 진실 말하는 악인

 ‘사이비’의 얼개는 이렇다. 가짜 장로 최경석(목소리 권해효)은 댐 건설로 수몰될 마을에서 감언이설로 주민들의 보상금을 갈취하려 한다. 주정뱅이 폭군 김민철(목소리 양익준)만이 정체를 눈치채지만,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는다.

 ‘사이비’는 이렇듯 거짓을 숨긴 악인과 진실을 말하는 악인의 팽팽한 긴장감을 다룬다. 누군가의 믿음은 짓밟히고, 누군가는 믿음을 위해 진실을 외면하는 지옥 같은 풍경을 그려낸다. 연상호 감독은 “모든 이가 자신만의 믿음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영어 제목이 ‘The Fake(더 페이크)’다.

 “‘가짜’라는 뜻도 있지만, 스포츠에서 상대를 속이는 동작을 뜻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연출방식도 뭔가를 감추다 나중에 드러내는 점에서 일종의 페이크라 생각했다. 사이비(似而非·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것)를 영어 문장으로 풀어보려다 단순하고 함축적인 제목이 나을 것 같았다.”

사이비 종교 논문까지 샅샅이 뒤져

‘사이비’의 한 장면. 수몰 지역 주민들을 배경으로 진실과 믿음의 간극을 파고든다. [사진 NEW]

 -사전 취재를 여러 달 했다던데.

 “사이비 종교에 관한 논문부터 샅샅이 뒤졌다. 2대째 이단을 연구하는 단체인 ‘현대종교’의 도움도 받았다. 1대 목사는 이단 교도의 칼에 맞아 죽었다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도 들었다.”

 -극 중 최경석의 사기 행각이 사실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일부러 의도한 바다. 아무것도 아닌 속임수에 마을 사람들이 속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중요한 건 믿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어떤 믿음이든 그것이 깨지는 순간의 불행에 더 주목하는 듯 보인다.

 “맞다. 마을 사람들은 대책 없는 광신도 같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의 믿음이 잘못됐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고통스런 현실보다 잘못된 믿음이 낫기 때문에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다.”

권해효·양익준 목소리 연기 맡아

 -여느 애니메이션과 달리 배우들이 시나리오만 보고 사전에 녹음을 진행했다.

 “애니메이션은 감독이 작화(作畵)까지 맡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에서 벗어나기 힘든 장르다. 그런데 녹음을 먼저 하면 의외의 디테일이 생겨 극이 풍성해진다. 캐릭터도 그렇다. 목소리를 연기한 양익준 덕분에 시나리오에는 없던 감수성이 더해졌다.”

 -시사회 직후 ‘기독교인으로서 불쾌하다’는 반응도 있던데.

 “전혀 예상 못했다. 제목이 엄연히 ‘사이비’아닌가. 그런데 왜 기독교를 나쁘게 얘기하느냐고 하면 당황스럽다.”

 -억눌려왔던 인물들이 폭발하는 계기가 매 작품 등장한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들에서 영향을 받았다. 일본 만화가 후루야 미노루의 ‘두더지’가 대표적이다. 인물의 심리가 섬뜩하게 확 바뀌는 지점들이 애니메이션답다고 생각한다. (실사영화처럼) 배우들에게 연기로 주문해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차기작은.

 “‘서울역’이라는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노숙자들과 가출 청소년들이 주인공인 스릴러다.”

이은선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김형석 영화평론가) : 사기꾼들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담아낸 고통스런 자화상. 우리가 겪어온 굴욕적 과거, 여전히 유효한 현재진행형의 지옥도.
★★★☆(이상용 영화평론가) : 한국 애니메이션 작가주의 존재 증명. 어두운 과거의 통과의례를 다루는 집요한 주제의식과 독특한 제작시스템이 일궈낸 특별한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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