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은 말한다|어떤 박해도 내 붓은 못 꺾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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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련의 「노벨」문학상수상자 알렉산드로·솔제니친은 최근 모스크바 주재 워싱턴·포스트지 특파원 로버트·카이저 기자와 의 단독회견에서 자신에 대한 소련정부의 조직적인 박해와 소련내정의 문제점들을 폭로했다. 다음은 3일자 워싱턴·포스트 지에 게재된 솔제니친의 논평을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주>
일종의 출입금지구역이라 할지 또는 오염지구 같은 것이 우리일가 주위에 설치되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리안(솔제니친이 살던 곳)에는 몇 해전 우리 집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내까지 직장서 해고 그리고 심지어는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며 모스크바 연구소장인 티모페예프는 자기 밑에서 일하던 제자가운데 하나가 바로 나의 처임을 알았을 때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부랴부랴 그녀를 해직시킨 일도 있다.
그들은 1965년 나를 질식상태에 빠뜨리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나의 도서자료 일체를 압류하고 내가 강제노동수용소시절에 쓴 저술들을 보고 놀랐다.
우선 그들은 나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 아이디어는 일체의 출판물에 나의 이름을 실리지 못하도록 하며 아무도 나에 관해 언급하지 못하게 하거나 비난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이러기 몇 년후 나의 이름은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때는 소련의 지하 출판물 사미즈다프 지가 활개를 치던 때였으므로 나의 저서는 널리 소련사회에 유포되어 있어 나의 이름을 아주 망각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비난하기로 결정했다. 1966년 이후 나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명령이 내려졌다. 처음 나는 나의 문학작품이 바로 범죄라고 해서 투옥됐었다.

<노벨상 이후 큰 곤욕>
때로는 나의 이름이 충성심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솔제니친을 아는가?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는 것이었다.
선전자들은 내가 유대인출신이라고 대중들에게 떠들어댔으나 스스로가 독일 군에 항복했다는 말을 하곤 했다.
추방된 후, 내가 국외로 탈출해야 된다는 것이 공공연한 암시였었다. 그때 노벨상문제로 큰 소동이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내가 노벨상수상자로 결정된 것이 나라를 배반한, 말하자면 유다 같은 존재로서 질책을 퍼부었다.
내가 비난을 받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새 소설 『1914년 8월』에 대해서 뿐이었다.
카이저 기자와 솔제니친과의 일문일답 요지는 다음과 같다.
-현재 집필중인 작품은?
『「1916년 10월」의 제2권이다.』
-곧 탈고할 예정인가?
『그렇지 못하다. 집필하다보니 예상보다 굉장히 복잡해졌다. 작품 속의 인물들엔 역사성이 내포돼 있기 때문에 불가불 19세기말 이래의 사회사와 사상사를 커버해야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해서 쓰기도 했다.

<번 돈은 조국복지에>
최근엔 또 나를 적대하는 외부상황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에 더욱 난점이 많아졌다. 그러나 1937∼38년 당시 로스트므의 한 무명시골학생의 입장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일은 다소 용이했다.(여기서 그는 1937∼38년 당시의 학생시절에 이미 이 작품을 구상했음을 시사했다.)
-자료 조사활동에 타인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가?
『없다, 누구도 나를 도와 줄 수 없다. 설사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둔다하더라도 나하고 마찬가지로 구속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집필 중에 있는 작품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서 간혹 호의를 가진 익명의 인사들이 여러 가지 책자와 자료들을 우송해준다. 그 가운덴 내가 꼭 필요로 하는 자료들이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당신은 서구에서 번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 생각인가?
『만약 가능하다면 내 조국의 전반적인 복지에 사용케 되도록 나의 변호사가 조치를 할 것이다. 나는 다만 노벨상의 상금(7만8천 달러만을 사용하겠다. 그것만으로도 큰돈이다.
-대작가에 대한 곤욕과 검문과 투옥이 소련인의 생활여건을 말해주는 변치 않는 단면이라는 말인가?
『당신의 질문은 피상적인 짤막한 대화로서는 다루어 질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러시아인의 전통에 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몇 마디의 말로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신중하지 못 하다고 생각한다.

<소 작가 서방서 더 유명>
-서방세계에 예프투셍코, 보즈네젠스키, 아크시노프 등의 작품으로 밝혀진 1960년대 초기작품을 지은 창조적인 에너지는 어떻게 생겼는가?
『당신이 언급한 작가들은 서방세계뿐만 아니라 소련에도 널리 알려졌었다. 실제 그런 시기는 5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당신이 언급한 작가들이 소련에서 보다 서방에서 더 인기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문학의 창조성의 일반적인 위대함을 뜻한다고는 볼 수 없다. 아니 그것이 뜻하는 전부는 그들의 작품이 보다 깊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더우기 아직 소련의 모든 작가들의 작품들이 발간된 것이 아닌 만큼 서방세계에 소련문학전부가 알려질 수는 없다.』
-소련 밖의 세상에서 당신은 봉쇄된 사회 안에서 투쟁하고 있는 서구적 정신의 상징으로서 문학적 영웅이 되어있다. 이에 대한 당신의 반응은 어떤 것인가?
『당신도 알겠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내 책이 내 조국 안에서 널리 출판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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