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전이냐? 실화냐? 현장검증서 의문점 드러낸 「팔레스·호텔」화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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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팔레스·호텔」의 화재원인을 조사중인 경찰은 27일 정확한 화인을 밝히지 못한 채 화인감정을 위해 서울대공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전문가들에게 현장검증을 의뢰했다.
26일 현장검증을 마친 치안국 감식계 최준호 경감은『화원은 502호실이 틀림없으나 화재를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 누전 때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해, 화재발생 당시 경찰이 추정했던 「누전설」에 의문을 품고 실화가 아닌가 보고 있다.
경찰은 화재가 일어났던 25일 건물 밖에서 처음 불을 발견한 연탄배달부 권행기씨(24)가 『5층 구석방에서 번쩍번쩍하는 「스파크」현상을 보았다』는 목격담과 화원지로 단정한 502호의 사용자인 「나이트·클럽」사장 차문석씨(51)가 이방을 살림방으로 꾸며 방안에 냉장고(금성 제품·1백20ℓ용량)·녹음기·영사기·「에어컨」·「코피·포트」등 많은 전열기구를 두고 써왔다는 점, 방안에 양파 등이 널려있는 것으로 보아 전기밥솥, 전기「곤로」등을 이용, 식사까지 해먹을 것이라는 점, 또 침대 아래쪽에 붙어있는 「콘센트」에는 「소키트」가 꽂힌 채 까맣게 타있다는 점등으로 일단 누전이나 혹은 전열기 과열로 인한 합선으로 화인을 추정했었다.
그러나 현장검증결과 많은 전기를 소모하는 전기 솥, 전기「곤로」·TV의 잔해가 발견되지 않았고 「에어컨」은 시기적으로 사용할 때가 아니며 발생시간은 상오6시50분쯤으로 전열기구를 과용할 시간이 아니라는 점, 전기「스탠드」조차 끄고 깊은 잠에 들어있을 때라는 점, 그리고 각층에 가설된 누전탐지기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등 여러 가지 상황증거가 「누전설」을 거의 뒤집고 있다.
이날 화재감식반의 한감식원은 침대가 놓인 북쪽 벽에 만들어 놓은 선반부근이 탄화현상이 제일 심해 발화점은 침대부근일 것이라고 추정, 불길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몰아쳤으며 창문 「새쉬」의 휜 모양과 유리파편의 균열상태, 방 네 귀퉁이의 그을음자취 등으로 보아 착화에서 발염까지는 「장시간동안」서서히 실내온도가 올라갔다고 말해 역시 누전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시사했다.
서울남대문경찰서 신가희 형사과장은 『화인의 「키」는 차문석씨가 쥐고있다』고 말하고 『취침을 전후한 차씨의 행적이 해결점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차씨는 불이 난 25일 새벽2시쯤 8층「나이트·클럽」에서 내려와 바로 잠을 잤는데 약간 취기가 있었다는 것이 경리주임 전수영씨(36)의 말.
특히 침대 밑에는 「플라스틱」제품인 휴지통이 밑바닥만 남은 채 녹아서 「카피트」에 붙어있고 바로 옆에 재떨이가 깨져있으며 휴지통에 몸체는 타버린 점과 침대는 흔적조차 없이 타버렸다는 점으로 보아 재떨이에 버린 담배꽁초가 휴지통의 휴지에 인화되어 「카피트」로 번진 것이 아닌가 하는 실화혐의로의 방향으로도 수사를 돌리고 있다. 차씨는 성심병원에 입원중이나 27일 현재 말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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