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의 물결·유해장난감·위험한 놀이터… 공해·불안의 환경에서 어린이를 보호하자|윤석중<아동문학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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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놀이터 잃은 어린이들>
『밖에 나가 놀지 못하겠니?』
아이들이 집안에서 떠들 때 어머니가 버럭 지르는 소리다.
『아이구, 무슨 놈의 방학이 이렇게 길담….』
아이들 등쌀에 방학을 저주하는 어른들의 짜증이다.
아이들 편에서 생각하면, 「어른들 등쌀」에 집문 밖으로 쫓겨난 어린이들은 어떤 대접을 받는가?
『냉큼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겠니? 차에 깔리고 싶으냐?』하마터면 아이를 칠 뻔한 운전사가 눈을 부라리며 야단치는 고함소리다.
집에선 밖으로 내쫓고, 밖에선 집으로 들이 쫓고…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것이 도시어린이의 「엉거주춤 하루」다. 차가 못 들어오게 하여「골목 안」만이라도, 오도가도 못하는 딱한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해방시켜 주자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경찰서 안에 「어린이 도서실」이 마련된 곳이 있지만 그처럼 마음을 써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경찰은 책 대신 놀이터를 마련해 주는 것이 좋을 것이며, 어린이 도서실은 차라리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교회에서 차려주면 어떨까?

<교회당마다 도서실을>
「교회당에 가면 읽고 싶은 책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어린이들 머리에 박힌다면 그러한 「고마운 집」에서 울려나오는 종소리야말로 새벽부터 들리더라도 반갑고 고맙게 느껴질 것이다.
「시끄러운 종소리」로 미움을 안 사기 위해서도, 종소리가 퍼지는 둘레 안의 모든 이에게, 그러기가 벅차다면, 어린이들에게 만이라도 혜택이 미쳐야겠는데, 「책 읽는 방」과 「뛰노는 마당」을 교회가 앞장서서 선선히 개방, 제공한다면 그런 고마울 데가 없을 것이다.
어른들에게 살림살이 세간이 필요한 것처럼 아이들에게는 놀이기구와 장난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서울 안 몇 군데 안 되는 놀이터의 놀이기구가 생명보험에 들기 전에는 가까이하기 어렵다니 큰 일이 아닌가.
서울 안 여든 네 곳의 어린이 놀이터부터 안전한가 어떤가, 고칠 데는 없는가를 하루바삐 알아봐야 할 것이니, 너무 높이 달린 그네, 육중한 쇠줄, 너무 두꺼운 발판 따위는 곁의 아이를 다치는 일이 많으며 너무 내리 박히는 높은 미끄럼틀은 서로가 맞 부딪혀 골탕을 먹기 쉽다. 층층대 오르기도, 한 층의 높이가 40㎝나 된다고 하니 어린 그들에게 너무나 벅차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시설들은 낮은 학년 어린이를 다루고있는 국민학교 교사 님들 의견을 고루 들어서 마음놓고 놀 수 있는 놀이기구가 되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진정 아끼는 마음 갖자>
시설보다도 앞서야 할 것은, 어린이를 진심으로 돌보고 아끼는 마음씨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무더운 여름, 더위를 먹게 된 어린이들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해주기 위하여, 일정한 지역을 차가 못 다니도록 딱 막고서는, 소방차들을 동원하여 소방수와 더불어 수많은 아이들이 무자위에서 치솟는 물줄기로 목물들을 하면서 한때나마 더위를 잊었는데 그때 마침 대통령(아이젠하워) 차가 거리를 지나가려다가 그들에게 방해가 될까보아 딴 데로 돌아갔다고 한다. 얼마나 멋있고 흐뭇한 이야긴가!

<서양아기 모습의 인형>
거리에 나도는 장난감들도 말이 아니다. 외국에 내다 파는 장난감에서 얼마를 덜어내어 나라안에서 비싼 값에 팔아치우는 모양인데, 인형이란 인형이 모조리 서양아기가 되어서 그것을 가지고 노는 우리아이들은 서양 집 식모 꼴밖에 안 된다. 장난감에도 영자로 「부·록」(블로크인 듯)이니, 「폴리스카」니, 「파이어·치프」, 「미니·홈·세트」니, 「마스코트·토이」, 심지어 우리말인 「아리랑」따위도 영자로 썼는가 하면, 무슨 소린지 모를 「월개놀이」라는 장난감도 나돌고있다 (달나라 개놀이란 말인지?). 대형「버스」같은 장난감은, 좌측통행용으로 만들어서 운전사 자리가 바른쪽에 마련됐고, 오르내리는 문이 왼편에 나있으니, 이런 것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교통사고 일으키기 꼭 알맞다. 우리 나라에서는 차가 우측통행이 되어서 모든 차가 그 반대로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은연중 사대사상 주입>
장난감 이름이야말로 아주 쉬운 우리말로 재미있게 붙여야겠는데 외국에 팔다 남은 찌꺼기를 그대로 국내에서 팔고 있으니 서먹서먹하기 이를데 없고, 어려서부터 사대사장에 물이 들게 되어 있다 (「쓰미끼」니 「적목=적목」이니 하는 따위 이름도, 「토막나무」쯤으로 유치원에서 고쳐 불러 주었으면 어떨까?)
오래 전에 있은 일이지만, 우산을 몰래 가지고 나가 놀다가 죄 망가뜨린 아들을 패주면서 호되게 꾸짖은 아버지가, 그 대신 가지고 놀 장난감을 사준 적이 한번도 없었음을 깨닫고, 죄는 자기에게 있는데 되려 아들을 때린 자기 손을 저주하는 일기를 보여준 친구가 있었다.

<작년 역사어린이 9백>
지금 우리 나라는 해마다 느느니 교통사고다. 지난 1년 동안 14세 이하 짜리 어린이가 차에 치여 다친 수가 8천1백11명에, 죽은 수가 9백9명이라고 하며, 전체 교통사고의 사망률이 27.2%인데 그 중에서 6세 이하 짜리 아기죽음이 14.3%라고 하니 학교 가기 전 어린이를 길에 혼자 내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 나라 교통사고는 해마다 25.4%씩 불어가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 나라인 미국은 차 2천33대에 1대 꼴로, 일본은 7백77대에 한 대꼴로, 우리 나라는 39대에 한대 꼴로 사고를 낸다고 하니, 운전사의 횡포와 길에서 노는 어린이들의 만용이 한데 어울린 소치라고 보겠다.
우리가 어린이들을 교통지옥에서 구출하고, 모든 공해에서 보호할 수 있는 지혜로운 지름길은, 안전한 놀이터와 장난감, 그리고 책에 마음붙일 수 있는 조용한 분위기를 마련해 주는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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