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값 미국의 4배 … 독점수입이 부풀린 바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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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이연수(36·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요즘 마트에 갈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이씨의 자녀들은 스니커즈 초콜릿을 좋아해 거의 매주 한 봉지씩 사 먹었다. 최근 일본 여행 때도 도쿄 이온마트에서 같은 제품을 샀다. 이씨는 “자주 사 먹어서 한국 가격(3950원)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일본 가격은 한국보다 싼 298엔(약 3208원)이었다”고 말했다. 귀국해선 더 기가 찬 사실을 알았다. 한국에서 파는 스니커즈는 한 봉지가 223g, 일본에선 산 제품은 240g이었다. g당 가격은 한국이 일본보다 32%나 비싼 셈이었다. 그는 “장거리 수송이야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할 텐데 나는 일본 주부보다 한 달에 3800원씩 바가지를 쓴 것”이라며 “몰랐을 땐 몰라도 알고 나니 속이 너무 상한다”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가 수입제품 구매에서 바가지를 쓰고 있다. 초콜릿 가격만이 아니라 본지가 패션제품·생활용품·식료품 등 13개 수입품의 한·미·일 소비자 가격을 현지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원숭이 인형이 달려 있는 가방으로 인기를 모으는 벨기에 키플링의 ‘클라스챌린지백’은 미국 맨해튼 메이시즈 백화점에서 99달러(약 10만6128원)에 팔린다. 그러나 한국에 오면 가격이 거의 두 배(18만8000원)로 뛴다. 일본 백화점 판매가는 1만3650엔(약 14만6945원)으로 한국보다 저렴하다. 8만원이면 한 달치 보험료(2분기 근로자가구 평균)고, 4만원이면 좀 더 보태 20㎏짜리 쌀 한 포대를 살 수 있다.

 심지어 가격이 서너 배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값은 한국 가격이 미국 소매가격의 4.2배에 달했다. 일본에 비해서도 두 배가량 비싸게 국내에서 팔린다. 유통 전문가들은 “유통·마케팅 비용, 인건비 등을 감안하더라도 미국 가격보다 30% 이상 높다면 폭리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명품 가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탈리아 아르마니 시계는 한국에서 95만원에 팔린다. 미국보다 약 31만원, 일본보다 약 36만원 비싸다. 가격 비교를 위한 환율은 달러당 1072원, 100엔당 1076.52원(11월 13일 기준)을 각각 적용했다. 특히 요즘은 원화가 강세이기 때문에 수입 물가는 떨어져야 정상이다. 달러 대비 원화가치는 지난달 평균이 1065.74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1105.49원)보다 4% 가까이 올랐다. 하지만 조사대상 13개 제품 중 폴로와 스토케를 뺀 11개 제품이 가격을 전혀 내리지 않았다.

 수입품 바가지는 독점 수입업체의 횡포 때문이다. 저렴한 병행수입 제품을 들여와 판매한 대형마트의 바이어는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을 수입업체로부터 받기도 했다. 해외 본사에 요구해 병행수입 업체에 대한 제품 공급을 끊기도 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가격이 비싼 것은 수입시장이 독과점이기 때문”이라며 “일본처럼 병행수입을 활성화해 경쟁이 치열해져야 가격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행수입=해외 상품의 국내 독점 판매권을 가진 업체가 아닌 다른 수입 업자가 물건을 들여와 파는 방식. 한국 정부도 1995년 11월부터 수입 공산품 가격을 내리기 위해 병행수입을 허용했다.

◆특별취재팀=최지영(뉴욕)·박태희(오사카)·구희령·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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