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남의 일이 아닌 항공기의 고층건물 충돌사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살면서 가장 놀랐던 일 중 하나가 살던 집 근처에서 일어났던 경비행기의 고층건물 충돌사고였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잠시 공부하던 때의 일이다. 원래 뉴욕이 사이렌 소리가 많은 도시이긴 했지만 그날따라 구급차와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는 유난스러웠다. 심란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데 버스 기사가 “요크애비뉴에서 일어난 비행기 충돌사고 때문에 차를 우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충격이란…. 아이가 그 시간 그 거리에 있는 학교에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요크애비뉴를 향해 뛰었다. 가면서 그쪽에서 올라오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학교는 괜찮으냐고. 그는 말했다. “학교는 괜찮다. 작은 비행기가 고층건물에 부딪쳤는데 두 개 층에 불이 났다.” 사고현장은 우리 집에서 예닐곱 블록 떨어진 곳이었다. 현장 앞엔 뉴욕의 소방차와 구급차는 모두 몰려온 듯했다. 10여 개 블록이 응급차들로 꽉 메워졌고, 소방대원·구급대원·경찰·취재진·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곳에서 서너 블록 떨어진 학교 앞은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로 북새통이었다. 그 후에도 집에서 창밖을 볼 때면 그을린 벽과 흰 장막이 쳐진 그 집이 눈에 들어와 을씨년스러웠다.

 주말 아침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에 헬기가 충돌했다는 소식에 이 기억이 확 떠올랐다. 이런 사고를 겪으면 사고 자체의 충격과 사망자에 대한 안타까움 등 여러 가지가 뒤엉켜 한동안 마음이 어지럽다. 게다가 항공기의 고층건물 충돌은 9·11테러를 통해 가장 잔혹한 테러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한데 테러도 아닌 사고로 항공기가 고층건물에 부딪는 걸 지척에서 두 번이나 경험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건물은 점점 높아지고, 하늘의 교통상황은 복잡해지면서 이런 사고도 ‘도시형 재난’의 한 유형이 될지 모른다는.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등 우리가 경험했던 도시형 재난은 예상치 못하는 순간 어이없이 일어났지만, 그 피해와 후유증은 크고 깊고 길었다. 한데 이 재난들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건 이들은 천재지변과 달리 모두 예방 가능했다는 것이다. 성수대교 위로 쉼 없이 지나다녔던 레미콘과 육중한 트럭들의 통행을 진작 제한했더라면, 삼풍백화점 부실시공을 제때 감시만 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들이 뒤늦게 쏟아졌다.

 이번 사고 원인은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항공기가 우리 집을 들이받는 재난이 교통사고처럼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됐다. 다행인 것은 이런 도시형 재난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고원인 규명과 별도로 당국의 철저한 예방노력 여하에 따라.

양선희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