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벤처에 인재 몰리는 건 스톡옵션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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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스톡옵션을 활성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논의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눠 정리해봤다.

 ◆스톡옵션 규제 완화 필요한가=벤처 창업 뒤 상장까지는 평균 13~14년이 걸린다. 현금이 넉넉지 않은 벤처가 스톡옵션을 활용하지 못하면 이 기간 중 우수 인력을 끌어들일 방법이 없다는 것이 기업인들의 하소연이었다. 벤처기업협회 김영수 전무는 “5000만원까지 해주던 스톡옵션 이익에 대한 비과세 제도가 2006년 폐지된 뒤 비상장 벤처기업에 스톡옵션은 의미가 없어졌다”며 “비상장 벤처에 삼성전자 수준의 규제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경험담도 이어졌다. 파크시스템스 조연옥 경영기획실장은 “스톡옵션을 준 회사는 회계상 비용 처리를 해야 해 불이익을 받고 직원은 적은 월급으로 세금을 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스톡옵션 때문에 벤처에 왔던 사람도 매력이 없다는 걸 알고 떠나니 지금 상태론 우수 인력을 붙잡아둘 수단이 없다”고 토로했다. 한글과컴퓨터 대표를 지낸 새누리당 전하진 의원도 “나도 스톡옵션을 행사하면서 세금이 부과돼 할 수 없이 주식을 팔았는데 주가가 떨어져 수익은 못 내고 세금만 냈다”며 “스톡옵션이라는 게 수익이 안 날 수도 있는 것인데 이걸 근로소득으로 봐 40% 넘는 세금을 매기는 것은 맞지 않는다. 인적 투자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한 적이 있는 쏠리드 정준 대표이사는 우수 인력이 벤처로 가는 미국과 대기업으로만 몰리는 한국의 차이점은 스톡옵션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미국은 보상시스템이 있어 벤처가 활성화되고 있고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로소득으로 봐야 하나=전문가들은 스톡옵션에 대한 과세시점을 늦추는 것이 꼭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근로소득세가 아닌 양도소득세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제 발표를 한 최혜원 삼일회계법인 상무는 비상장회사에 한해 주식 처분 시점에 양도소득세(세율 10, 20%)로 분류 과세하는 미국식의 인센티브 스톡옵션(ISO)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이에 따르면 비상장사가 나중에 상장돼도 비상장사처럼 과세된다. 최 상무는 “회사가 제3자에게 주식을 주면 증여로 봐 10%(1억원 이하) 세율로 과세하고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주면 40% 넘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세를 위한 비상장 주식 기업 평가 때도 회사의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될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스톡옵션을 주는 기업에 대한 혜택이 부족한 점도 지적됐다. 통상 비상장 벤처기업이 이용하는 신주발행형 스톡옵션은 기업회계상 비용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국세청으로부터는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해 세금 감면을 받지 못한다. 최 상무는 “법인세법을 고쳐 세금 감면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허원 조사관도 “스톡옵션은 몇 년간 일한 대가인데 이를 한번에 종합소득세로 누진과세하면서 세율이 너무 높아지고 있다. 이걸 몇 년에 걸쳐 분납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창조과학부 노경원 창조경제기획관은 “차라리 스톡옵션을 기타소득으로 보고 과세하되 일정 액수까지 분리과세를 허용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토론회를 주관한 김학용 의원은 “벤처기업 2만9000개 중 스톡옵션을 행사한 곳이 단 59개에 불과하다. 이번에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

 ◆회계기준 고쳐야 하나=이날 가장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던 부분이 회계기준 완화 문제였다. 지금은 벤처기업이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주면 매년 일정 금액을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토록 하고 있다. 벤처기업들은 신주발행형 스톡옵션의 경우 실제로 돈을 쓰는 게 아닌데도 회계장부에 돈이 나간 것처럼 기재돼 불이익을 당한다고 항변한다. 회사 순익이 줄고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기업들이 스톡옵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는 “상장회사의 회계기준인 국제회계기준(IFRS)을 비상장 벤처에까지 일괄 적용하면서 나타난 대표적인 부작용”이라며 “비상장 벤처에는 별도의 기준을 마련해 스톡옵션에 따른 주식보상비용을 반영하지 않게끔 하고 행사가격을 기업 자율에 맡겨야 스톡옵션이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회계기준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회계전문가 가운데서도 일정 규모 이하의 벤처기업은 IFRS 적용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주식보상비용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회계기준원 박세환 수석연구원은 “스톡옵션이 우수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훌륭한 보상제도이긴 하지만 ‘보상’이라는 성격에 맞는 회계처리가 필요하다”며 “IFRS나 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스톡옵션 관련 비용은 모두 예외 없이 비용으로 인식하게끔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미국에 규정은 있지만 실질적으로 비상장 벤처는 이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주장과 “상장을 목표로 하는 비상장사라면 IFRS를 일괄 적용하는 게 맞다”는 반론이 이어졌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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