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후기화풍 변화는 물감에 섞는 납중독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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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화가 「고야」의 화풍은 초기의 밝은 궁정인물화 중심에서 중기이후의 「그로데스크」한 사회비평화로 현저한 변모를 보였다. 미술사가들은 이러한 「고야」의 급변을 그가 중년에 겪은 심각한 질병 때문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최근 「뉴요크」의 한 정신병학자는 이 질병이 일반적으로 생각되듯이 정신분열증이나 매독에 의한 정신질환이 아니고 납이 섞인 물감을 사용할 때 「고야」가 취했던 특별한 습관으로 생긴 납중독이었다고 설명해 주목되었다.
「윌리엄·니덜런드」박사는 1792∼3년에 있은 「고야」의 거의 치명적이었던 질환은 납탄산염으로 만들어진 흰「페인트」를 많이 사용하고 또 한꺼번에 사용하는데서 생긴 것이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고야」(1746∼1828)는 한 작품을 대개 반나절에 다 그려버리는 빠른 제작방법을 택했고 이때 그는 다른 화가들보다 몇 배나 되는 납을 흡수하게 되었던 것이라는 얘기다.
정신분석학자이며 「뉴요크」주립대학 「다운스테이트·메디컬·센터」의 정신과 임상교수인 「니덜런드」박사는 자기의 이런 연구 결과를 「뉴요크·스테이트·저널·오브·메디신」지 최근호에 공개했다고 「뉴요크·타임스」는 크게 보도했다.
「뉴요크」 정신분석학회장인 「니덜런드」박사는 창조활동을 형성, 지시하는 인간생활에 있어서의 사건들과 창조성문제에 관한 전문가다. 그의 환자들 가운데는 많은 화가· 작곡가· 문인들이 있다. 「고야」의 병인에 관해서는 그 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비록 그의 미술적 변환이 질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천재적 소질의 발전으로 보려는 경향도 적지 않으나 질환자체의 원인에 관해서도 논쟁이 있는 것이다.
「니덜런드」박사는 이 많은 이론가운데 그림물감에서 원인을 찾아낸 최초의 인물이다.
현재 「메트러폴리턴」미술관이 소장한 『어린 「돈·마누엘·오소리오·드주니가」』는 「고야」의 초기작품을 대표하는 것인데 여기선 「친근감」을 느낀다고 「니덜런드」박사는 설명한다. 이 시대에 「고야」는 명랑한 궁정인물화들로 「마드리드」에서 가장 잘 팔리는 화가였다. 「니덜런드」박사는 「고야」이전이나 이후의 어떤 화가도 몇 시간 동안에 앉은자리에서 그렇게 완전하게 산 것 같은 초상을 그릴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같은 그의 재능과 빠른 제작기술 때문에 「고야」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됐다』는 것.
46세 때 「고야」는 1년여를 누워있어야만 했다. 말하기·듣기·균형 잡기 등이 곤란했을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보기도 어려웠고 반신을 쓸 수 없는 증상이 나타났다.
오랫동안 작품활동에서 손을 떼자 이들 증상은 가셨으나 귀머거리가 되었다. 그림을 다시 시작했을 때 그의 작품은 보다 깊고 더욱 표현적이 되었다. 『거칠고 거의 자비심 없이 냉혹한 세계관』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런 후기작풍은 『아들을 잡아먹는 「새턴」』같은 작품에서 뚜렷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의학자들이나 미술사가들은 「고야」가 매독이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아내가 20번 임신했으나 한 아기만을 산채 낳았다는 데서 근거를 둔 이론이다.
또 많은 정신병학자들은 그의 병 증세가 정신분열증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니덜런드」박사는 「고야」의 작품들을 연구한 결과 정신 분열적인 「페이스」가 아니라고 귀결지었다.
그의 납중독 이론은 「고야」의 증세가 폭발적인 납중독에 따른 뇌병으로 진단했다. 때문에 환경을 바꾸자 증상이 없어졌다. <공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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