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충성! 신병 이동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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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축구스타 이동국(24)선수의 대성통곡을 기억하는가.

지난해 10월 10일 부산아시안게임 축구 준결승. 이란과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5로 져 한국의 결승 진출이 좌절되자 그는 그라운드를 나오며 펑펑 울었다. TV에서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이동국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저리 슬피 우는가" 생각했을 것이다.

2002월드컵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막판 탈락했던 그는 병역 면제의 마지막 기회였던 아시안게임 우승도 놓치고 말았다. 그로부터 다섯 달 가까이 흐른 지난 5일. 머리를 짧게 자른 李선수는 국군체육부대(상무) 축구장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지난달 3일 상무에 합류해 사흘간 경례.상급자에 대한 예의 등 군인 기본교육을 받고 팀 훈련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신분은 군인이 아닌 입소대기 '장정'이다.

그는 오는 10일 논산훈련소에 들어가 신체검사를 하고 군번을 받은 뒤 비로소 '군인'이 된다. 6주간의 군사훈련은 K-리그가 끝난 뒤인 오는 11월 20일부터로 미뤄졌다. 올해부터 K-리그에 참가하는 상무의 전력 손실을 막기 위해서다. 얼굴색도 까무잡잡해지고 약간 말라 보이는 그를 인터뷰했다.

"새로운 분위기에서 열심히 해서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뻔한 스토리라 재미가 없다. '대성통곡' 얘기를 다시 꺼냈다.

"아시안게임 때 왜 그렇게 울었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걸어나오는데 박동혁 선수가 옆에서 우는 바람에 주장으로서 책임감도 느끼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병역면제 혜택을 못받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저절로 나더군요."

더 잔인한 질문을 했다.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이영표 선수는 병역을 면제받고 네덜란드 가서 뛰고 있는데."

"이영표 선수는 유럽 가서 잘하고, 저는 군대에서 잘하면 2년 뒤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법 군기가 든 자세였다. 너무 여유가 있어 때론 건방져 보였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강조 상무 감독도 '변화된 이동국'에 대해 한마디 했다.

"참 성실합니다. 바깥 사람들 얘기만 듣고 뺀질거릴 줄 알았는데 정말 열심히 하고 착합니다. 여기서 반드시 많이 바꿔서 나가라고 격려해주고 있습니다."

李선수의 일과는 단순하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점호와 에어로빅, 아침 식사를 한 뒤 오전.오후 훈련, 저녁 식사 후 개인 훈련, 오후 9시 점호를 마친 뒤 10시에는 소등.취침이다. 네 명이 한 방을 쓰는 숙소에는 벌써부터 위문편지가 쌓이고 있다.

선물을 보내주는 팬들도 많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이동국은 행운아다. 올해부터 상무가 K-리그에 참가하는 덕분에 프로리그에서 뛸 수 있게 됐다. 군 입대가 새옹지마요 전화위복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푸른 옷에 청춘을 실어보낸 그 시절, 모두가 힘들 때마다 주문(呪文)처럼 되뇌던 문구 아닌가.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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