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돌 곡선미 찾아 반평생|영남 석우 회장 김원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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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구=이용우 기자】『돌을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돌과 더불어 살아갈 뿐』이라 했다. 돌을 연구하며 살아온 반생. 대구시 남산 동169 김원백씨(53)는 30년째 돌의 매력에 끌려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은 영남 석우회 회장.
그러나 김씨는 지질학자도 아니오, 석공도 물론 아니다.
또 특별히 연구실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기거하는 셋방이 연구실인 셈.
새벽4시 김씨는 어김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잠옷바람으로 부인 조계난씨(53)가 끓여주는 코피 한잔으로 새벽녘 공복을 메우고 곧 돌의 연구작업을 시작한다.
낡고 닳아빠진 앉은뱅이 책상 위엔 산 수석 10여 개와 확대경·만년필·고서 등이 놓여있다.
김씨는 확대경을 들고 즐겨 찾는 산 수석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엎치락뒤치락 돌을 굴리며 색깔·무늬·석 질 등을 열심히 확대경을 통해 궤 뚫어 본다.
경주 포석정을 위주로 한 산 수석의 고증연구에 한창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의 이 같은 첫 일과는 조반을 먹는 시간을 빼고 상오10시까지 계속된다.
그러고는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사랑처럼 단골로 다니는 시내 포정동「초원」다방으로 발길을 옮긴다.
다방에 들어서면 으레 카운터 멀리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고 코피 한잔. 낮 12시까지 혼자 명상에 잠긴다.
『돌을 생각하는 시간』이란다. 김씨가 돌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일제말기 때 그가 동경대학 법과 2학년에 재학중의 일.
학우 중에「미찌꼬」라는 아름답고 상냥한 일본여학생이 있었다. 한창 나이에 김씨는 「미찌꼬」양을 열렬히 사랑했었다는 것.
그러나 결과는 김씨의 실연으로 끝났다. 이유야 너무나 간단하게도 민족적 차별이었다고.
이때부터 김씨는 학교도 그만두고 정처 없는 방랑의 길에 올라 만주로 건너갔다.
어느 날 그는「미찌고」를 생각하며 길을 쏘다니다 우연히 발끝에 차이는 한 개의 돌을 발견했다. 집어보니 희귀한 돌이었다. 어린애 주먹만한 이 돌의 부드러운 굴곡이「미찌꼬」의 우뚝 선 콧날처럼 보였다는 것.
김씨는 이 돌이 무엇인가 닮았다고 해서 물 형석이라 이름 붙였다.
이때부터 그는 돌을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주로 산 수석을 모았다.
지금 모은 형형색색의 각종 돌은 모두 3만개. 방안·장독대·마루 밑·뜰 할 것 없이 김씨 집에는 걸리는 게 돌이다.
김씨는 처음 돌의 모양에만 흥미가 있었으나 차츰 『돌에서 미를 찾고 부 터』 돌의 역사와 괴석의 고증도 함께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러 자니 자연히 방랑벽까지 생겨 느닷없이 돌을 찾아 산 계곡을 찾아 헤맨다.
한 달이면 3주일이상 돌을 찾아 먼길을 떠나있다. 일정을 짤 필요도 없이 주머니 돈이 다될 때까지 이틀이고 사흘이고 산에서 지낸다. 그래서 경남-북 일대 곳곳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고 한 개의 돌을 캐거나 줍기 위해 여러 번 위험도 무릅썼다.
수십 길 벼랑도 타고 깊은 강도 건너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미 석을 찾으나 그는 선이 부드럽고 우리 나라에서 귀한 산 수석을 좋아한다.
주먹만한 것에서부터 어른머리 만한 것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돌을 주워 다 놓았다.
『돌로 인해 문명의 발달이 가능했다』고 김씨는 굳게 믿고 있다.
『말많은 세상보다는 돌이 더 좋다며 돌로부터 인간형성의 무한한 노력을 배웠다』고 강조한다. 이 돌의 수집자금을 마련키 위해 사환·신문배달원 노릇도 해보았고 고 서점·양말공장·당구장도 경영해 보았다.
평생 집 한 채 없이 전세 23만원 짜리 셋방 2개에 5식구가 겨우 지내왔다. 맏딸 은희 양 (23)이 공장에 다니고 부인이 행상으로 집안을 꾸려간다.
김씨는 살림에 아무 보탬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도리어 지금은 아버지의 취미를 이해하게 된 딸이 월급을 쪼개 아버지의 용돈을 대수고 있다.
쪼들려드는 살림 때문에 이사를 할 때마다 온 가족의 하나같은 걱정이 세간 살이 옮기는 것보다 3만여 개의 크고 작은 돌멩이를 옮기는 일이었다.
8년 전엔 돌에 취미를 같이한 대구시내 법조인들과 저명인사 18명은 영남 석 우회를 만들었다.
김씨는 이 회장직을 가장 명예롭게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 밟히는 것이 돌이지만 돌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말없이 남을 사랑하고 남에게 겸손할 줄 아는 것』을 김씨는 돌에서 배우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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