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민사관」 바로 잡은 신채호 선생|그의 36주기 추모기념 강연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단재 신채호 선생 36주기 추모기념 강연회가 21일 하오1시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렸다.
조국독립을 위한 광복운동의 선구자이며 사학자요 언론인이었던 단재가 여순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기일인 21일을 택해 그를 추모하는 한편 『단재 신채호 전집』의 간행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강연회의 발기인은 이은상·이선근·홍이섭·김용태·박영준·신범식 제씨.
이날 개회사에서 노산 이은상씨는 특히 「단재사학」이라고까지 불리는 그의 민족사론의 의미를 분석했다. 『비자주성적인 오기와 곡론이 수천년간 지속하던 한국사단에 혁명아가 일어나 누천년 묵고 그릇된 기사 속에서 오히려 민족의 본 면목을 밝혀내고 그래서 민족의 사통을 바로 잡기에 명석하고 용감했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단재 신채호 선생이었다』고 설명했다.
사마천의 『사기』가 중국민족의 주체성을 가장 강렬하게 아로새겨 중국인으로 하여금 후세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다른 모든 민족에게 대해 극히 오만한 과대적 자존심을 갖고 대하도록 영향을 주게 됐다는 것. 그로부터 중국의 역대사서가 모두 중국민족의 주관적 위치에서 기록한데 대해 한국의 사서들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이른바 정사라고 하는 모든 사서들이 사대적인 필법에 의해 이루어진 점을 노산은 지적했다.
고려와 이조에 있어서 김부식과 정인지 등 역사 편찬자들의 사대적 사고방식 때문에 현존 사서들은 어느 의미에 있어서 우리에게 『일종의 사대성적 교본』노릇을 해놨던 것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일제의 식민사론에 따라 우리의 역사를 말살, 왜곡하는 논술을 오히려 정론탁설인양 맹신·맹종하는 학자마저 없지 않았음을 그는 지적했다.
이에 비해 만주벌을 휘돌아 선민의 유허에서 실증을 얻고 고사의 기록을 새로 파헤쳐 거기서 남이 못 보는 것을 보고 버려진 보배를 애써 거둬 민족의 자주성에 입각한 정필의 역사를 써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등으로 발표한 단재의 정신업적은 특히 빛나는 것이라 했다.
『단재 선생의 역사관』이란 제목으로 강연한 이선근 박사(영남대 총장)도 『단재가 참된 애국자였음은 물론이지만 올바른 우리 민족의 역사관을 비로소 확립해 놓은 위대한 사학자』라고 평했다. 『얼핏보아 비참하기만 했던 한국역사를 역대주조의 정권교체니 왕실종친들의 골육상잔이니 양반 귀족들의 붕당 싸움이니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니 하는 잿더미 속에서 그 잔재, 그 망령을 제거·불식하고, 싱싱한 민족대중의 창조적 노력 속에서 멋진 생활과 줄기찬 저항 속에서 발전해 온 문화의 역사로 약동해온, 생명의 역사로 되찾아 빛나게 한 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특히 단재 사관의 중요한 몇 가지를 소개했다.
①우리 국사 서술은 우리 민족을 아의 단위로 삼고 이런 아의 생장발달 상태를 서술의 제1요건으로 삼고 나아가 아의 상대자인 각족파의 관계를 제2의 요건으로 삼을 것이라 한 것 ②화랑도와 불교·유교 등 삼가의 원류와 정체를 밝혀 민족사의 흘러온 방향을 명시하고 김부식을 중심한 유가의 사대주의를 통박하고 논죄한 것 ③사학도의 양심과 재검토의 기반을 중시하고 사론의 공정성을 강조한 것 등에서 단재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홍이섭 박사(연세대교수)도 『민족사가로서의 신채호 선생』을 얘기하면서 『민족사를 처음으로 우리 입장에서 본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말의 사가 가운데 역사기술을 자기 생명같이 여겨 자결한 매천 황현과 망명을 통한 저항으로 역사를 쓴 단재와 박은식을 높이 평가하면서 특히 자기 정신을 내세우고 고증을 통해 체계 있게 역사를 요약한 단재의 민족사가로서의 업적을 들었다.
『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이 없는 민족을, 정신이 없는 민족은 정신이 없는 국가를 만드는데, 한말 우리 학자들의 역사 기술태도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고 한 단재의 말은 그의 사관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이날 특히 강조되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