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부시의 話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자네 요즘도 PC방에 자주 가나?"

교수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PC방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학생이라면 "네" 또는 "아니오"라고 대답해선 안된다. 둘 다 틀린 답변이기 때문이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복합 질문의 오류'라고 부른다. 과거 PC방에 갔었는지는 따로 증명해야 하는 데도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한데 묶어 질문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이 심하게 닳아 있는 것을 보고 "역시 한국 사람은 성미가 급해"라고 단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해당한다. "그이가 내게 '못 생기지 않았다'고 했으니 나를 미녀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해"라고 말하는 것은 '흑백사고의 오류'에 빠진 경우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말을 조리없이 하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국제사회에 대해 무식하다는 특징도 있다. 그는 파키스탄 대통령.인도 총리의 이름을 몰라 망신당했으며, 슬로베니아를 슬로바키아와 혼동한 적도 있다.

단, 야구.미식축구나 선거전략.사형선고처럼 흥미를 느끼는 사안들에 대해선 아주 명료하게 말한다고 한다(마크 밀러 '부시의 언어장애'.김태항 역).

부시는 2000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기자가 당원들의 단합 여부를 묻자 "나는 단결을 확신한다. 당원들은 단결하리라고 확신한다. 내가 그렇게 믿는 이유는 우리 당은 단결돼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변했다. 대답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입증할 대상을 논거(論據)로 삼는 '순환논증의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약과다.

공개 석상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칭찬하면서 "우리는 실수를 했으며 성교도 했습니다"라고 실언하는가 하면 단수.복수.과거완료형 같은 기초 영문법에 어긋나는 말도 수없이 쏟아냈다. 그래서 단순성 탓에 놀림을 받았던 레이건조차 부시와 비교한다면 '윈스턴 처칠 수준'이라는 조크가 나왔다.

명문 사립고와 예일대를 졸업했고, 말 잘하기로 유명한 앨 고어와의 치열한 선거전에서 승리한 부시 대통령이 멍청한 사람일 리는 없다. 실수가 잦긴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내뱉는 화법을 즐긴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 부시가 사흘 전 북핵문제에 대해 "외교적 해결이 효과 없으면 최종적으로 군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리학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우리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발언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노재현 국제부차장

<바로잡습니다>

3월7일자 31면 ‘분수대’내용 중 레이건 전 대통령을 칭찬하면서 “우리는 실수를 했으며 성교도 했습니다”라고 실언한 사람은 조지 W 부시 현 미 대통령이 아니라 부친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었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