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 칼럼] 減稅의 경제학과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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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세율이 0%면 납세자는 즐겁겠지만 세수가 한푼도 없어 나라 살림이 안된다. 세율이 1백%면 버는 것을 모두 세금으로 빼앗기니 누구도 일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니 정부는 생산 의욕과 세수 안정을 감안해 최적 세율을 결정한다.

그런데 아더 래퍼라는 경제학자가 묘한 소리를 했다. 1970년대 후반의 미국 경제는 이 최적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세율을 올릴수록 생산 감퇴로 세수가 줄어들고, 세율을 내릴수록 생산 증대로 세수가 늘어난다고 말이다. 세금을 깎아도 세입이 늘어난다니 정책 당국자한테는 그야말로 복음 말씀이렷다.

*** 세금 깎아도 세입 늘어난다니

래퍼는 이 아이디어를 워싱턴의 한 식당 냅킨에 휘갈겼다. 이렇게 태어난 '래퍼 커브'는 한 경제학자의 야유대로 국회의원들이 3초 안에 알아듣고 석달 동안 우려먹을 근사한 화제가 되었다. 그래야만 법안으로 올라간다!

출신과(?) 내용이 이렇게 빈약한 데도 재정 적자 확대에 반감을 가진 월 스트리트 저널은 공급주의 경제학이란 이름으로 홍보했고, 두뇌구조가 다소 단순하다는 평을 듣는 레이건 대통령은 여기에 혹해 레이거노믹스 정책을 만들어냈다.

참여 정부는 세정 개혁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상속세 포괄주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토지보유세와 근로소득세 개혁을 강조한다. 최근 김진표 경제 부총리는 법인세 세율 인하를 예고했다.

盧대통령과 李실장의 개혁 의도가 사회 정의와 빈부 완화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金부총리의 발표는 다분히 경기 회복을 겨냥한 듯하다. 앞의 두 현안이 아직은 공약과 정책 구상 수준에서의 문제 제기일 뿐이지만, 현 정부 임기 동안 동남아 경쟁국 수준으로 법인세율을 낮추겠다는 金부총리의 제안은 당장 기업의 이목을 끌 만하다.

여기 기대와 불안이 엇갈리는데, 먼저 기대 쪽이다.

첫째, 세정 개혁을 계기로 정부가 재정 정책에 주력하고 통화와 금융 정책은 중앙은행에 넘겨줄 요량이라면 이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은행을 경제기획원의 '남대문 출장소'로 여기던 역대 정권의 오해와 탈선을 고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서도 주변 경쟁국보다 월등히 높은 세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 일례로 우리 법인세율은 평균 27%나 되는데 홍콩은 16%에 불과하다.

셋째, '예외 없는 세율화'로 조세 체계를 바로잡는 이익이다. 온갖 감면과 비과세 명분의 조세 구멍을 막고 특혜 누더기를 없애 세정의 효율을 높이는 작업이 시급하다.

넷째, 내국인 기업에 대한 역차별 시정이다. 업종과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외국인 투자 기업에는 7년간 법인세 면제와 이후 3년간 50% 삭감의 특혜를 베풀면서, 국내 기업에는 고율의 납세 부담을 지우고 경쟁력 강화를 재촉하는 것은 형평에도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

다음으로 불안 요소이다.

첫째, 정부가 덜 쓰고 더 많이 민간에 돌리는 것이 현 정권의 '개혁 체질'에 맞느냐는 질문이다. 감세는 전통적으로 보수주의 약방의 감초이며, 법인세율 인하가 "대기업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즉각 盧대통령에 의해 제동이 걸렸으니 '김칫국'만 먼저 마신 셈인가?

둘째, 연간 22조원에-국세의 19%에-이르는 '황금 알' 세원을 섣불리 손대기 어려울지 모른다. 행정 수도 이전을 비롯한 각종 공약 사업 재원은 그러잖아도 모자라는 형편이다.

*** 레이거노믹스 파탄 거울 삼길

셋째, 세금 삭감이 재정 적자만 부추기는 위험이다. 이런 감세 효과 착각이 레이건 집권 8년에 사상 최대의 연방 채무를 안기고 레이거노믹스의 파탄을 불러왔다.

넷째, 세율 인하가 소비와 투자에 얼마나 매력적 유인이 될지 확실하지 않다. 예컨대 제로-사실상 마이너스-금리에도 외부 차입을 사양하는 기업들이 세금 몇 푼 깎아준다고 덥석 미끼를(!) 물지 적이 의문이다. 투자는 경제의 변수이면서 정치 환경의 변수다. 물론 우리 의원들도 3초면 알아듣고, 총대 메고 나설 언론도 있을 것이다.

정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