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복수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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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노가수 고복수씨가 세상을 떠났다. 만년에도 때때로 그는 TV에 출연했었다. 해묵은 노래들이지만, 감동은 언제나 새롭고 그윽했다. TV앞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새삼 시속의 공허 같은 것을 느끼곤 했었다.
고복수 시대를 함께 살아온 세대들에겐 깊은 상흔을 어루만지는 것 같은 침울한 상념이 스쳐간다. 세월의 풍상 속에서 아득히 잊어 버리고 살던 『그 시대』의 「리듬」에 불현듯 젖어 망각의 시문들이 잠시나마 회상되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똑같은 노래지만, 「그 시대」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대들의 감정은 어떨지 궁금하다.
더구나 용수철이 퉁기는 것 같은 현대의 재즈에 매료되어 있는 세대들에겐 그 노래가 어떤 감상을 줄지 어림을 할수가 없다.
3, 40대 이상의 세대들이 공감하는 그 동기와는 전혀 다르지 않겠는가.
하나, 언젠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어느 인기가수의 리사이틀을 중계하는 TV를 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 게스트로 고복수씨가 초대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심벌처럼 되어있는 그 『타향살이』를 구성지게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연장안은 어느새 합창으로 변해 버렸다. 세대의 분별없이 누구나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청중들 사이에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광경도 TV 스파트에 비쳤다. 물론 식민치하의 암울한 시절을 모르고 자란 젊은 세대들도 그 군중 속엔 있었다. 그들도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것은 비록 그 노래를 느끼는 모티브는 세대간에 다를지 모르지만 적어도 감정의 밀도만은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복고조로 일소하기엔 그 「공감」의 첩이 너무 넓은 것 같았다.
어쩌면 오늘의 대중이 갖고있는 의식의 심저엔 변함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청춘만 늙고…』 『하늘은 저쪽…』 『그때는 옛말...』 『언제나 타향‥』의 그 감정은 오늘의 대중들 마음속에도 살아있는 것이나 아닐까?
우리의 생활은 공연히 너나없이 들떠있다. 오늘의 번다한 상황은 누구나 목연의 자신들을 빼앗아가 버렸다. 적어도 마음의 고향을 온전히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더우기나 시대정신의 퇴폐는 누구나 하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적어도 「정신의 식민화」 「인간의 부재」 「인간정신의 소외」와도 통한다. 우리는 모두들 자기를 잃고 「타향」에 머물러 사는 사람들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세속에서 고복수씨는 마치 부엉이가 울듯이 고고하게 노래를 부르다가 간 것이다. 그는 갔지만 노래의 여운은 아직도 우리의 귀에 머물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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