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진우의 저구마을 편지] 슬픔 안에서 행복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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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일 때문에 집을 하루 비운 사이, 중학교 때 친구가 딸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습니다. 아내가 전화로 이름을 말해주었지만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 보니 24년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에는 반가움 대신 저와 아내의 마음을 저리게 만드는 슬픔이 화장보다 짙게 묻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친구가 왜, 어떻게 왔는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리게 한 친구의 슬픔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를 휩싸고 있었던 슬픔과 그 슬픔을 달랜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슬픔이 기쁨을 찾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슬픔을 차오르게 만든 모든 것들을 달래고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이틀이 지나자 친구는 오랜 불면증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얼굴에도 15살 소녀 적 웃음이 되살아났지요. 서울로 떠나며 우리에게 선한 미소를 선물로 주고 갔습니다. 그 미소는 우리 집에 오래 남아 슬픔 안에서 행복을 찾는 길을 늘 열어 놓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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