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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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기이하게도 서구 작가들의 소설 속에는 술 마시는 장면이 잘 나온다. 작중인물들이 모두술꾼들이기 때문일까.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는 벨모드·키안티라는 술이 자주 나온다. 이 소설의 무대는 이탈리아다. 따라서 이탈리아의 특산주가 나오지 않으면 맛이 적었을 것이다. 헤밍웨이 자신은 원래 위스키파였었다고 하는데도….
그의 <태양은 또 오른다>에 나오는 술은 한결 다채롭다. 무대가 이탈리아일 때는 친차노, 파리일 때는 압상, 스페인일 때는 말라가 등 술 이름도 각각 달라진다.
어떻게 보면 술은 소설에서는 소도구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가난한 남부를 그린 스타인벡과 콜드웰의 소설들에서 밀조 주를 빼놓을 수는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것은 가령 러시아 시대의 고골리나 투르게니에프의 작품에서 보트카를 빼 놓을 수 없고 애란의 시인 딜란·토마스의 시에서 아이리쉬·위스키의 내음을 빼놓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가장 효과적으로 술을 쓴 것은 아마 레마르크의 <개선문>일 게다. 여기서 주인공 라비크가 즐겨 마시는 칼바도스는 단순히 죽은 애인 시빌과의 사랑만을 일깨워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모든 술들이 작품에서 그처럼 중요한 뜻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각 나라의 특산 주들이기 때문이다.
술맛이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고도 한다. 그만큼 어느 나라나 특산주가 있다.
프랑스에는 코냑, 샴페인이 있다. 스페인엔 셰리가 있다. 포르투갈은 포트·와인으로 유명하다. 독일에는 또 맥주가 있다. 캐나다까지도 캐너디언·위스키를 자랑하고 있다.
멕시코에 가면 누구나 테킬라를 마신다. 화란에 가면 특산 홀란디아·진을 마신다. 서머시트·몸의 남태평양을 그린 소설에는 럼주가 나온다.
우리 나라 소설에서는 왠지 술 마시는 장면이 적다. 남녀가 마주앉아 마시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장소에 어울리고 따로 내세울만한 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네 특산 주라면 탁주와 약주를 친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게 못된다. 남에게 권하기는 더욱 어렵다. 딱한 일이다.
물론 이 밖에 정종(정종)이라는 청주가 있기는 하다. 사실은 『정종』이란 왜말 『마사무네』를 받아 옮긴 것이다. 더욱 딱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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