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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중공 방문 제1막(3)-정상화의 실마리 스탠리·카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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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닉슨」미 대통령은 북경 방문 때 미-중공사이에 항구적인 고위급 의사소통 경로를 수립하는데 중공 지도자들이 동의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사 소통 경로는 미, 중공간의 문제를 다루게될 『협상단』의 형태를 띨 수도 있고 양국 외교관의 정기적 상호교환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업무의 책임자로서 중공 문제에 밝은 고위급 전문가가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하마평이 내리지 않은 이 외교관은 미국과 중공이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할 때까지 실질적으로 잠정적 대사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만약 중공 측에서 이러한 관계수립이 동의한다면 지금까지 「바르샤바」에서 진행되어온 양국 대사간의 회담은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닉슨」대통령은 지난1월2일 CBS방송국 「댄·래더」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제의를 했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바 있다.
얼마 전 북경에 도착한 선발대는 자기들이 가지고 간 장비를 사용, 「워싱턴」과 교신했다. 이 밖에도 미국은 지난 7월 「키진저」가 북경을 방문한 이래 중공 지도자들과 비밀리에 교신경로를 열어 놓았다. 이 교신 경로는 아마 「캐나다」주재 중공 대사관을 통한 것으로 보이며 후에 중공 「유엔」대표단이 「뉴요크」에 도착한 다음부터는 이리로 통한 것 같다. 「키신저」의 첫 북경 방문 전에는 양국사이의 교신경로가 어찌나 나빴던지 「키신저」는 북경공항에서 자기가 주은래의 영접을 받으리라는 사실도 미리 알지 못했다.
사실「닉슨」대통령이 「키신저」를 특사로 선정한 이유는 바로 교신 수단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사로 뽑힌 자는 「워싱턴」과 교신이 끊어진 상태에서 회담을 해야 될 것이기 때문에 미-중 관계에 대한 「닉슨」대통령의 생각을 잘 아는 사람이 그 역할을 맡아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논리적 귀결로 「키신저」가 선정된 것이다.
중공으로 하여금 「키신저」를 초청케 하도록 중개역할을 해준 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4월말쯤 「닉슨」대통령은 이미 그러한 초청을 받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닉슨」대통령은 4월29일 기자회견에서 『어떤 자격으로든』중공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아무도 묻지 않는데 그런 말을 한 것은 자기의 북경 방문의도를 널리 알리려는데 있다.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는 중공이 「닉슨」방문을 환영하리라는 첫 시사는 모택동과 미국작가 「에드가·스노」씨의 「인터뷰」내용 속에서 나왔다고 생각해왔다.
70년 말「스노」씨에게 허용된 이 「인터뷰」내용은 71년4월 중순 중공정부의 허가를 받은 후에야 「라이프」지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사실 「닉슨」은 「스노」씨의 「인터뷰」가 보도되기 전에 이미 비밀 경로를 통해 중공이 자기의 방문을 환영하리라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그러나 「스노」씨의 「인터뷰」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했다.
첫째 그의 「인터뷰」는 중공 측 의도가 신중하다는 점을 「닉슨」대통령에게 확인해 주었고, 둘째 모가 「닉슨」에게 낸 초대를 공식화시켜주어 모가 이를 철회시키기 어렵게 만들었다.
7월9일 「키신저」가 북경에 도착하기 전에, 그가 비밀경로를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은 단지 중공 지도자들이 그에게 창피를 줄 생각이 없으며, 중공의 대미 접근 노력은 신중한 것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지금 와서 볼 때 당시 중공 지도자들 사이에는 「닉슨」행정부와의 화해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던 것 같다. 수상 주은래는 이 논쟁에서 찬성 편을 든 것 같고, 당시까지만 해도 모의 후계자였던 임표는 반대편을 든 것 같다.
임표가 마지막으로 공석 상에 나타난 것은 「루마니아」 「차우세스쿠」대통령을 영접한 작년 6월3일이었는데 그는 그 이후 사망한 것으로 믿어진다.
지난 7월 「키신저」가 북경을 몰래 방문했을 때, 그는 임표의 영접을 기대했었는데 임이 나타나지 않자 어리둥절했던 것으로 보도된바있다. 그대는 아직 임표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키신저」행이 처음 북경을 방문했을 때 북경 관리들은 그들을 일반대중으로부터 숨겼다.
이러한 태도는 중공 지도자들이 그 때까지만 해도 「키신저」의 접근에 대해 확실한 태도를 갖지 못했다고 추정할 수가 있다.
그러나 두 번째 방문 때는 「키신저」일행이 북경거리를 공개적 호송을 받으며 돌아 다녔다. 이와 같은 변화는 그 동안에 중공인민들이 대미화해 움직임을 받아들이도록 설득되어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두번째 방문중 어느 날 저녁, 「키신저」일행은 중국 「오페라」를 참관할 계획이 세워져있었다. 그러나 주은래와의 회담이 오래 끌어 한시간이 늦어졌고 다시 저녁 식사 때문에 한시간이 더 늦어졌다.
그래서 두 시간이나 늦게 「오페라」극장에 일행이 도착했을 때 「오페라」단과 청중들이 그때까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안내한 중공 관리들은 청중이 모두 공산당 요원들이라고 설명했다.
「키신저」는 그 말을 듣고 『이야말로 우리에겐 엄청난 체험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내하던 관리는 청중들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오히려 저 사람들에게 엄청난 체험이 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차례>
①새「아시아」의 전개 「스튜어트·헨슬리」
②닉슨·모 가상대화 「플·프랑새스키니」
③「정상화」의 실마리 「스탠리·카노」
④속앓이하는 소련 영 「이코너미스트」지
⑤대통령의 정상 회담 「조지·블」
⑥유례없는 준비작업(상·하) 「프레드·물루멘털」
⑦에필로그

<필자는 미「워싱턴·포스트」지의 외교문제 전문가. 「닉슨」의 중공 방문에 취재 수행자로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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