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진달래에 쏟은 「여정 40년」|제주시 「진달래 아줌마」 강죽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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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진달래 아줌마」는 진달래꽃이 그렇게 좋았나 보다. 13세의 앳된 소녀 때부터 진달래만 가꾸며 살아오기 40년. 강죽선씨(53)는 그의 변명처럼 진달래와 더불어 은은히 살아온 인생이었다.
제주시 건입동 680의 1번지. 사라봉 공원 입구에서 동남쪽 50m, 양지 바른 언덕 밑에 온통 진달래 꽃밭인 화원이 있다. 넓이는 2천3백여평. 한쪽 모퉁이에 자리잡은 1백평 온실과 1천여평 꽃밭에는 3천6백의 각종 진달래 화분 이외에 8만 그루의 묘목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진달래 종류만도 2백50종. 버섯 모양·우산 모양·깎아 세운 듯한 벼랑 모양·땅을 기는 뱀의 모양·젖먹이는 어머니 모습 등…진달래 가지 하나 하나가 모두 정성스럽고 기묘하다.
꽃색도 많았다. 연분홍 진분홍 진흥색 연홍색 연보라 진보라에 흑색과 백색. 갖가지 빛깔로 화원이 온통 환하다. 특히 4월 초 꽃이 피기 시작해서 6월 하순 꽃잎이 질 때까지 화원은 장관을 이룬다.
이때 「진달래 아줌마」 강씨는 꽃밭의 한 가운데 호젓이 서서 만발한 꽃을 감상하며 소녀처럼 흐뭇해한다. 그는 마치 이 한철을 위해 사는 듯 했다. 꽃밭이 그의 인생을 바친 작품처럼-.
2월에 들면 「진달래 아줌마」 강씨의 일손은 바빠진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온실에 들어간다. 흙투성이 남자 고무신에 작업복 차림. 먼저 온실의 온도계를 점검한다. 적온 15도. 다음은 화분 손질.
쥐가 들랑거리며 뜯어낸 꽂잎을 따낸다.
상오 8시, 부엌에서 작업복 차림 그대로 아침 한술을 뜨면 이 사이 인부 4, 5명이 60㎏들이 깻묵을 깨어 꽃밭에 거름을 낸다.
낮일은 주로 묘 판 작업. 사방 70㎝짜리 묘 판이 3백70개. 한 묘 판에 8백개의 삽 목이 꽂혀 있다. 묘 판마다 한 차례 물을 주고 나면 화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16개의 야외 등에 불이 켜진다. 해 저문 6시가 넘었기 때문-. 밤 9시쯤 보온을 위해 묘 판에 거적을 모두 덮고 나면 하루 일이 끝난다.
이 같은 작업을 매일처럼 계속하는게 강씨의 일과.
타고난 취미라 했다. 그러나 취미치고는 꽃밭의 규모가 너무 크고 투자가 한없다. 매달 꽃밭을 가꾸는 비용만도 40여만원이 든다. 68년이래 4년 사이 꽃밭에 밀어 넣은 돈만도 1천5백만원은 될 것이라 했다. 꽃을 아예 팔질 않으니 수입이란게 있을 턱이 없다. 그렇다고 강 씨는 남한테도 꽃을 잘 주지 않는 성미. 잘 기르지도 못하고 시들어 죽게 하기 때문에 남한테 분양해 주지 않는다는 것. 마냥 껴안고 보고만 싶은 야릇한 심정 때문인가.
남제주군 서귀포 읍하효리에서 태어난 그는 큰내에 물 길러 갈 때마다 벼랑에 소복히 핀 진달래를 좋아했다.
나이 13세 때. 꽃을 꺾어 물병에 꽂기도 했고 손톱에 처매어 연분홍 연지를 곱게 물들이기도 했다.
진달래 처녀는 18세 때 지금의 남편 변성익씨 (60)와 결혼, 그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남의 셋방에 살면서도 반찬값을 아껴 화분과 흙 봉지를 사고 소녀 때부터 좋아했던 진달래만 사모아 가꿨다. 『셋방 처지에 무슨 극성이냐고 말리던 남편도 2년 뒤에는 꽃을 수집하는 취미를 이해해 주었다』고 했다. 그의 극성스런 취미 때문에 이웃들은 강씨 더러 「하나기찌까이」 (꽃 미치광이) 라고 불렀다. 그가 30세 때까지 모은 진달래는 1백20여종 7백 그루. 조그만 화원 하나 몫이었다. 운수업을 하는 남편의 사업이 잘 되어 뒷받침이 되었다. 북해도에서 「오끼나와」까지 그가 일본에 사는 동안 갖가지 모양의 진달래를 구하러 다녔다.
68년11월 강씨 나이 50세 때, 제주에 돌아오면서 진달래를 모두 고향의 동산에 심기로 결정, 5백36종 3천2그루를 화분에 담아 배에 싣고 재산 반입 「케이스」로 실어왔다. 그중 2백50종 1천1백 그루. 나머지는 배에서 시들어 죽거나 화분 째 파도에 밀려 잃기도 했다.
이제는 아내 못지 않게 남편 변씨도 진달래 가꾸기에 열성이 대단하다.
일본에서 제주에 돌아온 68년이래 제주시 주변에 사두었던 부동산 1만5천여평을 팔아 진달래 화원 조성비에 모두 써버렸다. 변창보 (30·중대 졸) 변창세 (27·서울대 의대 재학) 씨 등 슬하의 6남매도 강씨의 진달래 취미를 말리지 못한다.
『향기가 짙지 않아 은은하고 곱게 피어 곱게 져 좋아졌다』-.
강씨가 진달래를 좋아하게 된 모두.
올해 처음으로 서울에서 15년생 진달래를 분당 1만원씩 주고 사겠다고 제의해 봤으나 거절했다. 『죽기전 1백만 그루를 만들어 집집마다 나눠주고 고향에는 진달래 공원을 만들어 보겠다』는게 「진달래 아줌마」 강씨의 소원. 올 봄 진달래가 만발하는 5월15일부터 6월15일까지는 화원을 만든지 처음으로 진달래 동산을 무료로 공개하겠단다.

<제주=서송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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