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제25화 「카페」시절(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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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트로이카」카페>
순 일본인만 모여서 사는 명동 큰길가에 새로 「카페」가 등장했다. 술은 「러시아」에서 이름높은 소주 「워드카」.
처음 듣는 소리요 게다가 술안주와 차까지 전부 「러시아」것이었다. 모두들 신기하게 여겨 한번쯤은 기웃한다. 이 「카페」의 주인이 바로 김문집 사건에 중재역으로 등장했던 연학년군이다. 술집이름도 「러시아」의 명문을 따서 「트로이카」라 했다.
「트로이카」란-「러시아」 사람들이 눈길을 헤치며 타고 다니는 썰매다.
이 친구는 본시 그 부친이 일본 동경에 있는 외국어학교에서 한국말을 가르칠 때 일본서 나서 일본서 자라난 내력이 있어서 일본말은 일본촌사람보다 훨씬 유창했다. 그렇게나 하니까 일본인 촌에서 술장사를 벌였을 것이다. 본시는 일본 동경에서 고등상업학교에 다니다가 연극이 좋아서 토월회 동인이 되고 서울공연 때 훌륭한 연기도 보여주었지만 성미가 타고난 반공이라서 기어이 짓궂게 일인의 시가지 한복판에 술집을 벌이고 하필이면 「러시아」 술을 팔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술집에 한 어여쁜 소녀가 나타났다. 분명 일본여자이다. 나이는 15∼16세 정도. 소리만 지르면 금시 울 것 같은 소녀였다. 더우기 기막힌 일은 그의 이름이다.
「마고!」라고 했다. 얼핏 들으면 일본 여자이니까 그런 이름도 있을 법하겠지만, 「마고」라는 이름을 한자로 쓰면 오싹해진다.
「마자」
악마라는 마자이니 말이다. 『이 사람아 기껏 동경까지 가서 골라온 계집애가 하필이면 마자야. 거 어떻게된 이름이지.』
여러 번 물었으나 그는 시원한 대답이 없더니 어느 날 저녁손님도 다 흩어지고 조용한 틈을 타 그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마자가 누구인지 알어-저 애가 바로 과격파로 몰려서 사형을 당한 일본인 대삼형의 딸야.』
「카페」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상범의 딸을 일부러 데려다 놓고 바라보고 있는 연군의 취미는 좀 색다르다.
연군이 약간 좌경을 해가는 것 같다는 쑥덕공론이 퍼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트로이카」는 적색분자가 좋아서 마시는 술을 파는데다가 술을 나르는 계집아이까지 일본에서도 유명한 좌익의 거물 대삼형의 딸이라니 너무나 이색적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연의 뒤에는 언제나 본정경찰서 고등계형사가 뒤를 밟게 된 것도 짐작이 간다.
어쨌든 연은 화제를 자아내는 사나이였다.
「카페」 「트로이카」만 가지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았던지 명치정에다가 또 한집 「카페」를 벌였으니 그 이름은 「리라」였다.
이번에는 「프랑스」식으로 술장사를 해본다는 듯이 이름도 「프랑스」에서 많이 일컫는 꽃 이름을 딴 것이다.
「트로이카」와는 달리 밤을 새워가며 조용히 술을 파는 「카페」로 일류급으로 호평이었다. 아가씨는 물론 전부 일녀이지만, 교양이 있고 의젓하였다. 연군의 상술은 적중, 점잖은 손님들이 단골로 등장했다. 당시에 양주를 마시는 고급손님이라면 먼저 경성제국대학 젊은 교수를 첫손꼽았다.
그들은 거의가 구미각국을 돌아온 사람들이라서 「카페」에서 술 마시는 멋을 알고 있던가보다.
이래서 「리라」의 인기는 날로 높아가니 「트로이카」와 함께 연군의 장사는 크게 재미를 본 셈이다.
물론 연군은 토월회 동인으로 무대에까지 오른 사람으로 술장사만으로는 만족 못했다. 그래서 고학생을 모아서 극단을 조직하고 공연도 몇 번하고 고학당의 운영에도 손을 댔으나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는 결국 극단운영에 자본을 다 털어 넣고 결국은 뜻밖의 병을 얻어 한창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극단에다가 정신을 쏟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죽을리는 없었다.』고 지금도 그의 죽음을 아깝게 여기는 친구도 있지만, 어쨌든지 한국인으로 일본인의 거류지에 뚫고 들어가서 「카페」를 벌이고 깃발을 날렸다는 사실은 자못 통쾌했다. 연군과 친교가 두터워서 「리라」로 모여들던 「멤버」는 적지 않아 이루 생각이 나지 않지만, 도상봉·백명곤·조택원·김팔봉·장희식·정인익 등 명사들이 기억에 떠오른다. <계속> [제자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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